[사설] 대학원생 마구 부려먹는 서울대 교수들
입력 2012-10-11 18:22
해마다 10월이면 많은 사람이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에 귀를 세운다. 올해도 탁월한 업적을 세운 과학자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을 보면서 부러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낀다. 이들의 공통점은 연구자들 사이에 끈끈하면서도 건강한 유대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존 거든과 야마나카 신야는 옥스퍼드대 사제간이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미국 듀크대 로버트 레프코위츠 교수와 스탠퍼드대 브라이언 코빌카 교수 역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지난한 연구를 진행하는 데 사제지간은 더할 수 없는 파트너이기에 오랜 관계를 지속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10일 서울대 인권센터 발표에 따르면 석·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들에 대한 교수들의 횡포가 상상을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원생 1380명을 대상으로 무기명 설문조사를 하고 그중 30여명과는 심층면접을 진행해 어느 조사보다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제자 폭행 논란을 일으키며 2011년 3월 서울대 음대 교수직에서 파면된 김모 교수의 교훈이 무색해진 셈이다.
인권침해는 학습과 노동, 환경 부문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10명 중 1명은 연구비를 빼돌리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교수의 논문을 대필하거나 제자 논문을 가로챈 경우도 8.7%나 됐다. 가장 심각한 것은 개인의 일을 대학원생들에게 시키는 부분이다. 교수 아들의 생일파티에 불려가 풍선을 불고, 교수 부인의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심지어 해외출장 간 교수의 빈 집에 가서 개밥을 줬다고 한다. 머슴살이나 다름없다. 지도교수의 논문 심사비로 수백만원을 낸다는 증언도 충격적이다.
문제는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서 교수는 ‘슈퍼 갑’의 위상을 지니기 때문이다. 특히 논문 심사를 앞둔 대학원생은 고양이 앞에서 벌벌 떠는 쥐 신세다. 박사과정 학생에게 무릎을 꿇게 하거나 여학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해도 항의조차 못한다. 교수의 눈 밖에 나면 졸업이 어려워지는 등 여러 불이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이 정도면 다른 대학의 사정은 물어보나 마나다. 조사 대상인 공과대나 자연대, 농업생명과학대, 사회대, 사범대가 이러하니 수련 과정이 엄격한 의대나 도제식 수업이 이루어지는 예능 계열의 침해 수준은 더 높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래서야 학문의 전당이라고 할 수 없다. 관행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반지성적이다. 사랑과 신뢰, 상호 존중의 사제관계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앉는 것은 굴종의 노예관계다. 오죽하면 석사과정은 사노비, 박사과정은 공노비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아름다운 사제관계를 거울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