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美 크루그먼 교수, “경제 민주화 조건은 정치와 자본의 균형”
입력 2012-10-10 19:31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사진)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10일 “소득 수준 차이는 시장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프로세스에 의해 발생한다”고 밝혔다. ‘경제 민주화,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서울 상도동 숭실대에서 열린 이날 강연은 최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경제 민주화’에 대한 유명 석학의 의견을 듣는 자리여서 큰 관심을 끌었다.
강연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 사례를 언급하며 ‘경제 민주화’의 조건으로는 민주주의 정치와 자본의 ‘균형감’을 꼽았다. ‘공화당 저격수’라고 불릴 만큼 민주당 성향의 진보 경제학자인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은 보수당의 집권 이후 그 소득 격차도 심화됐다”며 “오바마 재선 여부에 따라 미국 경제 과제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정치와 자본의 균형 문제를 언급하면서 재벌중심의 경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은 나쁘고 중소기업은 좋다는 선입견 자체가 편협한 생각”이라면서도 “다만 민주화 사회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견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 짓는 것은 규모가 아닌 ‘정치 영향력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이어 “한국의 ‘재벌’도 정치 영향력을 너무 많이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한국 재벌경제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대선을 앞두고 최대 화두로 떠오른 복지 제도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전 국민 복지 제도’가 가장 좋은 제도”라며 “저소득층에게만 주는 혜택은 이들의 경제활동에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수급자를 선정할 때는 ‘얼마나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필요한가’가 중요하다”며 “정치적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복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오늘날의 사회는 소수의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슈퍼스타(Super star) 이론’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며 “소득 분배는 노조와 같은 사회 규범이나 정치 세력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했다. 또 미국 정치는 진보와 보수라는 경제 이념과 인종 형평성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는데 소득분배·복지 이슈에 대해서는 정치 입장 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숭실 석좌강좌’는 숭실대 개교 115주년을 맞아 개최됐으며 내년 2월에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강연자로 나설 예정이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