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애인 여자양궁 간판 이화숙의 특별한 꿈 “은퇴 후 지도자보다 장애 체육인 돕는 행정가 되고파”

입력 2012-10-10 21:44

그는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 장애를 얻었다. 디자인 일을 하던 그는 서른두 살이 되어서야 활을 잡았다. 그때부터 활은 그의 삶을 지탱해 준 ‘목발’이 되었다. 한국 장애인 여자 양궁의 간판 이화숙(46·지체 3급·경기). 못 말리는 열정을 가진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2012 런던 패럴림픽에서 개인전 은메달과 ‘숙자매’ 고희숙, 김란숙과 함께 한국의 역대 첫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이화숙은 12일까지 경기지역 11개 시ㆍ군 32개 경기장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전에 출전 중이다. 그는 런던에서 돌아온 후 청와대 방문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한 데다 이번 대회 성화 봉송 주자로도 나서 정상 컨디션이 아니지만 9일 양궁 리커브 ARST(절단 및 기타 장애) 부문 6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화숙에게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 봤다. “4년 뒤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도 출전하고 싶어요.” 그는 열정이 넘치는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했다. “벌써 선수생활에서 은퇴하고 싶진 않아요. 아직 제가 장애인 양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이화숙은 할 수 있는 게 많지만 해 놓은 것도 많다. 그는 양궁에 입문한 지 3년 만인 지난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세계신기록을 잇따라 수립하며 한국 여자 양궁을 대표하는 선수로 떠올랐다. 패럴림픽에도 세 번이나 출전했다. 2004년 아테네에서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으며 2008년 베이징에선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이화숙은 런던 패럴림픽 때 딴 두 개의 메달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런던에 갔을 때 심한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최악이었죠. 그런데 막상 활을 쏘니 기가 막히게 잘 꽂히는 거예요.”

선수생활을 마친 후 지도자가 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화숙은 잘라 말했다. “지도자는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기회가 오면 장애인 체육인들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일하고 싶어요.”

지도자보다 행정가를 꿈꾸는 이화숙은 선수로는 유일하게 한국장애인올림픽위원회(KPC)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 선수들을 위한 실업팀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생계 걱정 없이 운동하는 게 모든 장애인 선수들의 소원입니다.” 이화숙은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장애인 선수들이 지자체나 체육회 소속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대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