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가스 맞선 6인의 영웅, 40분 사투 끝 밸브 차단… 구미 불산 누출 현장 최초 진입한 김천소방대원들
입력 2012-10-10 21:48
“희뿌연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연료탱크로 접근하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탱크 안에 있던 불산 중 8t은 유출됐지만 나머지 12t의 유출을 막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스럽습니다.”
지난달 27일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한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휴브글로벌 사고 현장에서 쉼 없이 누출되던 탱크로리의 연료밸브를 차단한 경북 김천소방서 119구조대 소속 엄정중(43) 소방위는 10일 경북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분초를 다퉜던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엄 소방위가 사고현장에 도착, 현황을 파악한 뒤 동료들과 연료밸브를 잠그기 위해 나선 것은 이날 오후 9시쯤이었다.
가장 시급한 과제인 연료밸브 차단을 위해 중앙구조단에서 파견된 직원 3명과 자신을 포함한 김천소방서 소속 김영정(34)·정현진(27) 소방교 등 모두 6명이 3개조를 편성, 무게 10㎏의 화학보호복을 착용하고 현장에 접근했다.
하지만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엄청난 불산 누출로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데다 누출 지점이 어딘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 여기에다 불산 누출로 인한 연료탱크 파손 등 2차 사고 우려도 많아 대원들은 극도로 긴장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엄익상(48) 대표 등 회사 관계자들조차도 탱크로리 어느 부분에서 불산이 새나오는지 파악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다.
초강력 랜턴을 비춰도 확보되는 시야는 불과 30㎝ 남짓. 그런 악조건에서도 엄 소방위는 탱크로리를 샅샅이 뒤져 투입된 지 1시간이 채 안 된 오후 9시38분 원료밸브 차단에 극적으로 성공했다.
“6명이 목숨 걸고 밸브를 찾아 헤집었는데 운 좋게도 제가 찾았습니다. 밸브를 차단하는 순간, 강력하게 뿜어 나오던 가스가 현저히 줄어드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어 공기호흡기를 교체하기 위해 잠시 철수했다가 30분쯤 뒤 현장에 2차 접근을 해 밸브가 제대로 차단됐는지를 재확인했
다.
다시 철수했다가 자정이 넘어 현장에 3차 접근을 했다. 회사 측의 요구로 연료탱크 불산 누출 부위와 주변을 세척하는 등 7시간 가까이 현장에서 초인적인 작업을 했다. 다음날 새벽 4시쯤에야 완전 철수를 할 수 있었다.
안전장비를 착용했음에도 엄 소방위를 비롯한 직원 3명은 현재 모세기관지염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엄 소방위는 “소방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대구=글·사진 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