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 초중고 학칙 자율 제·개정 실태조사

입력 2012-10-10 18:47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학교규칙 제·개정 실태를 파악한다. 교육감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학칙을 만들었는지 중점적으로 점검하게 된다. 서울·경기·광주 등 ‘진보교육감’이 주도한 학생인권조례를 반영한 일선 학교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돼 조례를 둘러싼 교과부와 진보 교육계 간 갈등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 관계자는 “이달 말까지 초·중·고교가 개정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학칙을 제·개정했는지를 파악해달라는 공문을 8일 17개 시·도 교육청에 보냈다”고 10일 밝혔다. 학교가 용모와 소지품,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 자체적으로 학칙을 정하도록 한 개정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지난 4월 시행된 이후 첫 실태 조사다.

점검 사항은 시행령이 규정한 두발·복장 등 용모에 관한 사항, 교육목적상 필요한 학생의 소지품 검사, 전자기기 사용 등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을 학칙에 기재했는지 여부다. 특히 이런 학칙을 정하기 전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의견을 들었는지도 확인한다.

그동안 교과부와 진보교육감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서울·경기도·광주 등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시·도 교육청은 학칙에 조례를 반영하라고 일선 학교에 지시했으나 교과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학칙은 학교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교과부가 조례 무력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해석한다. 가장 반발이 심했던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물러난 뒤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대영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은 조례에 부정적이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일선 학교에 학칙제정 실태조사 공문을 보내는 등 조례 폐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단순한 실태조사가 아니라 시행령에 맞게 학칙을 개정하라는 지침”이라고 귀띔했다. 교과부와 교육청 눈치를 보느라 학칙 개정을 유보했던 학교들에 교과부 입장을 적극적으로 따르도록 지시했다는 설명이다. 만약 일선 학교가 학생의 개성추구권과 사생활을 보장하라는 조례를 수용하는 대신 시행령에 따라 자율적으로 두발·복장 등을 제한하는 학칙을 만들면 조례는 실질적으로 효력을 잃는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가장 반발하는 두발 길이를 구체적으로 규제하는 학칙을 학교가 만든다면 교육청 차원에서 막을 계획”이라고 반발했다.

이도경 김수현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