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인] ‘낮은 물값’ 정책 고민해 볼 때
입력 2012-10-10 18:36
물은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자원 중 하나다. 2010년 유엔은 “물은 기본적 인권”이라고 선언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식수와 공중위생에 대한 권리는 삶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는 데 필수적인 인간의 권리임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와 가뭄이 전 세계적으로 빈발하여 수자원 관리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상기후 등으로 인한 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올 6월에는 가뭄 때문에 양파 등 갓 파종한 식물들이 말라 죽었는데, 8∼9월의 국지성 호우로 포도농가는 출하를 앞둔 포도를 포기해야 했다. 또한 장기간의 가뭄과 무더위로 인해 녹조가 강물을 뒤덮는 일까지 벌어졌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에는 수돗물 단수 사고까지 증가하는 추세라 그로 인한 서민 불편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노후화된 수도관이 개량되지 않아 일어난 것이다. 20년 이상 되어 교체가 시급한 노후관이 전국적으로 4만㎞가 넘는다. 그 결과 광역상수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단수 사고가 2005년 51건에서 2010년 104건으로 104% 증가했다. 작년 경북 구미시에서 발생한 10여일간의 단수 사고로 빨래는커녕 마실 물도 없어 고생했던 일을 돌이켜 보면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지역별 상수도 보급률은 어떨까. 7개 특별시와 광역시 등 대규모 지자체는 100%에 육박하는 수준이나 읍·면지역 상수도 보급률은 여전히 60%를 밑돌고 있다. 이는 지역적으로 차별적인 물 복지 수준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수돗물 수질 문제, 단수, 지역별 보급률 차이 등의 피해가 저소득층에게 더욱 크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단수가 되면 생수 구입, 지역 이동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은 모든 피해를 다른 방법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 인권 실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한데, 턱없이 낮은 수도요금으로 인해 추가 재원 마련은커녕 현행 시설 유지·관리에도 어려움이 많다.
현재 수도요금은 7년째 동결 상태로 물 생산원가의 80% 수준에 불과하다. 즉, 물 생산에 100원을 투자하여 공급할 때마다 20원씩 손해를 보는 구조다. 서민들이 안심하고 수돗물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고도정수처리시설을 확대하고 노후관을 교체하는 등 시설 투자가 절실함에도 재원 부족 때문에 계속해서 우선순위가 밀리는 안타까운 형편인 것이다.
생산원가보다 낮은 요금을 유지하는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국민경제를 왜곡시킨다. 이런 왜곡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궁극적으로 국민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생산원가와 요금의 괴리를 메우는 방식은 조세로 인한 자원 배분의 왜곡과 물을 과소비하게 하는 왜곡을 초래한다. 재정 지원으로 생산원가와 요금의 괴리를 메워주지 않으면 사업자들은 필요한 시설 관리와 미래 수요에 대비한 투자를 회피하게 된다.
낮은 물값은 당장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민을 위한 물 복지 및 물 인권 향상을 위한 정책 실현에 장애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물 절약의 필요성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 이제 정책 당국은 보편적 물 복지와 물 기본권 실현을 위해 고민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박상인 교수(서울대교수·행정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