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타면 덜 낸다… 마일리지 자동차 보험 돌풍

입력 2012-10-10 18:08


앙리라는 프랑스인이 “한국에서는 차를 적게 타도 왜 보험료는 똑같이 내야 하느냐”며 억울해 하는 TV광고가 있다. 이어지는 화면에서는 ‘적게 타면 적게 낸다’는 마일리지 자동차 보험이 소개된다. 주행거리를 따져 보험료를 깎아주는 보험이다. 운전을 덜하면 사고 확률도 낮아진다는 통계적 가정이 깔려 있다.

누가 봐도 이치에 맞는 상품인 마일리지 보험은 시장에 나온 지 아직 1년이 안 됐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출시 8개월여 만에 가입 100만건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자동차보험 상품으로는 전례가 없는 기록이다. 올해 신규 자동차보험 계약 중 약 절반이 마일리지 보험일 정도다.

금융당국은 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차량을 약 356만대로 추산한다. 개인 승용차 4대 중 1대 수준으로 가입 수요가 아직 많은 편이다. 지난달 29일 기준 가입 건수는 136만5674건이었다. 연말에는 200만건에 이를 것으로 손해보험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특약 형태로 도입된 마일리지 보험은 주행거리가 7000㎞ 이하인 운전자에게 자동차 보험료를 5∼16% 깎아준다. 할인율은 연간 주행거리가 3000㎞ 이하면 11∼16%, 5000㎞ 이하면 8∼9%, 7000㎞ 이하면 5∼7% 정도다. 가입 전 자신의 연평균 주행거리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장거리 운행이 많아 연평균 7000㎞ 이상 차를 몬다면 가입할 이유가 없다.

할인 방식은 두 가지다. 가입 시 할인된 보험료를 내고 나중에 주행거리를 검증받는 ‘선(先)할인’과 만기 때 주행거리를 따져 보험료를 돌려받는 ‘후(後)할인’. 가입자는 선할인, 보험사는 후할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선할인 방식은 할인율을 미리 적용받는다는 이점이 있지만 가입 조건이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차량 출고 후 소유주가 바뀐 적이 있다면 가입이 안 된다. 후할인 방식은 보험기간이 3개월 이상 남아있기만 하면 가입할 수 있다.

주행거리는 운전자가 직접 계기판을 사진으로 찍어 등록하거나 차량운행정보 확인장치(OBD)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증명한다. 보험사 대부분이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한다. 가입자는 편한 쪽을 고르면 된다. 보험사는 조작 우려가 적은 OBD를 선호하지만 가입자에게는 찬밥 신세다. OBD는 자기 돈 3만∼5만원을 내고 추가 장치를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행거리 확인과 할인 방식은 할인율에 영향을 준다. 보험사 대부분은 후할인 방식으로 가입하고 OBD를 설치한 고객에게 보험료를 1∼2% 포인트 정도 추가로 깎아준다. 다만 AXA다이렉트와 그린손해보험은 선할인 방식으로만 판다.

보험사들은 마일리지 보험이 차량 운행거리를 단축시켜 환경오염을 줄이고 가입자 부담을 덜어주는 상품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이런 효과를 보려면 할인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가입자 개인이 연평균 주행거리를 얼마나 단축했는지 따져 보험료를 깎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할인이 적용되는 구간을 일괄 적용해 운전을 원래 적게 하는 사람에게 유리할 뿐 운전을 덜하게 하는 효과는 약하다. 자동차 운행량이 줄지 않는다면 사고율도 개선되지 않는다. 이 경우 마일리지 보험은 보험사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보험료는 깎아주는데 내주는 보험금이 그대로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초 마일리지 보험이 불티나게 팔려나가자 일부 보험사는 광고를 중단하고 안내를 소홀히 하는 등 뒷걸음질쳤다. 많이 팔아봤자 별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자동차보험 갱신을 앞두고 있던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보험사가 마일리지 보험을 안내하는지 두고 보겠다”고 했을 정도다.

보험사도 할 말은 있다. 주행거리 조작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마일리지 보험 가입자 대다수가 이용하는 계기판 사진 전송 방식은 촬영 시점을 속이거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수정하는 경우 등을 모두 걸러내긴 어렵다”며 “선할인 가입 후 주행거리를 넘겼을 때도 가입자가 보험료 환수를 거부하면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마일리지 보험 외에도 자동차 보험료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보험 설계사나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로 가입하면 보험료가 10∼15% 더 싸다. 또 평일 하루 동안 운전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요일제 특약에 들면 보험료를 8% 정도 아낄 수 있다. 다만 마일리지 보험과 함께 가입할 순 없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