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X’ 류승범 “안으로 침잠하는 캐릭터 진심이 전달돼 좋아요”

입력 2012-10-10 17:59


배우 류승범(32)이 달라졌다. 영화 ‘품행제로’ ‘사생결단’ ‘부당거래’ 등에서 보여준 거칠고 욕하고 싸우고 감정을 밖으로 표출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이번엔 소심하고 속으로 삭이고 남몰래 사랑하는 천재 수학자다. 영화 내내 감정의 폭이 크지 않다. 안으로 침잠하는 캐릭터다.

류승범을 10일 서울 신문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용의자X’(감독 방은진)에서 천재임을 숨기고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평범하게 살고 있는 김석고 역을 맡았다. 짝사랑하던 옆집 여자 화선(이요원)이 우발적으로 전 남편을 죽인 것을 알게 된 후 그녀를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꾸민다. 유력한 용의자인 화선은 형사들의 추적을 받지만 거짓말탐지기까지 따돌린다.

영화는 석고가 어떻게 감쪽같은 알리바이를 설계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밀도 있게 끌고 나간다. 잔잔하게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이 영화의 중심에 류승범이 있다. 방 감독은 시사회 후 기자회견에서 “드디어 류승범만이 할 수 있는 멜로가 나왔다”며 “연기를 잘하는 탁월한 배우”라고 평했다.

류승범이 생각하는 석고는 도시의 삶에서 소외된 인물. 그는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과 단절됐고 천재성이 있으나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아 패배자가 된 인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석고는 짝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큰 희생을 감행한다. 현실에서 이런 사랑이 가능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간이다 보니 사랑을 주고받고 싶다. 피드백이 없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영화 속 행동은 어려울 것 같다. 석고의 사랑은 내가 모르는 사랑의 영역인 것 같다. 종교적인 위대한 사랑의 경지랄까. 기독교인이라 그런 사랑을 이해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 “사람을 오래 깊게 만나는 스타일이다. 세월을 두고 천천히 가까워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친해져 관계가 단단해진 영화인으로는 최민식과 황정민이 있다. “황정민씨는 꽤 오래 알고 지내 지금은 그냥 큰 형 같다. 최민식 선배는 워낙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라 제가 많이 따라다녔다”고 전했다.

류승범은 사실 이 영화를 선택해야 할 무렵 편하진 않았다. 몇 년을 계속해서 연기를 하다보니 지쳤고 재충전이 필요했다. 할지 말지 고민이 됐다. 그는 “촬영·조명감독, 방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다. 영화에 대한 진심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동지를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또 “요즘 자극적이고 관객몰이를 위해 만든 상업영화가 많은데 우리 영화는 세련된 방식의 얘기는 아니지만 진심이 전달되는 것 같아 좋다”고 덧붙였다.

극중 석고의 취미는 프리다이빙(무호흡잠수: 산소 호흡기 없이 맨 몸으로 물속에 들어가는 스포츠). 수영을 전혀 못하는 그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였다. 그는 “100% 대역 없이 찍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냐”고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한 달 동안 잠실에서 훈련을 했다. 물을 무서워하는데 하다보니 정말 안되는 게 없더라. 나중엔 ‘잠실의 돌고래’로 불렸다”고 말했다.

연기 대선배가 감독이라 부담도 컸을 터. 그는 “감독님이 소위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이다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걱정부터 됐다. 연기를 하면서 검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감독님은 매 장면마다 디테일하게 지시하는 엄청 피곤한 스타일”이라며 웃었다.

그는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일관된 콘셉트가 없다. 그냥 느낌대로 영화를 고른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고 오늘을 잘 살자는 주의다. 기본적으로 야심이나 욕망이 없다. 누구를 이겨야지 하는 라이벌의식도 없고, 나보다 잘하면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스타일이다. 포기도 빠르고 잊을 건 빨리 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쿨’해 보인다고 하나보다”며 웃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