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재엽] 탄도미사일, 만능 아니다
입력 2012-10-10 18:35
“정확도 높은 순항미사일과 역할 나눠 신속·광역 대응 필요한 표적에 배치해야”
지난 7일 정부의 ‘새로운 미사일 정책선언’이 공식 발표되었다. 2001년 한·미 미사일지침이 채택된 지 11년 만이며, 미국과의 개정 협상에 착수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이번 선언으로 우리나라가 개발해 보유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는 기존 300㎞에서 800㎞ 이내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사거리가 550㎞일 경우에는 탄두 중량을 종전의 500㎏에서 1000㎏으로 두 배로 늘리게 된 것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사실상 탄두 중량 제한을 없앨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탄도·순항미사일과 같은 범주에 포함된 무인항공기(UAV) 개발에 관한 제약사항도 대폭 완화되게 되었다.
사거리 800㎞의 탄도미사일은 충청도를 비롯한 중부지역에서 북한 영토 전체를, 남부지역에서 신의주 등 북한의 주요 후방 지역을 공격할 수 있다. 방어에 불리한 전방 지역에 배치되어야 했던 기존의 사거리 300㎞급 탄도미사일보다 안전한 위치에서, 북한의 정치·경제·군사적인 핵심 표적들을 공격권 내에 두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산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연장은 북한의 군사위협을 억제하고 분쇄하는 데 커다란 군사적인 우위를 제공할 것임이 분명하다.
갈수록 군사적인 가치가 커지고 있는 무인항공기의 개발에 미치는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선언으로 국산 무인항공기의 탑재 중량은 종전의 500㎏에서 미국의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와 대등한 2500㎏으로 5배 늘어났다.
이로써 적의 지상 요격권에서 자유로운 15㎞ 안팎의 중·고고도에서 장시간 체공하면서, 실시간으로 주요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대형 무인정찰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상당 규모의 공대지 무기를 탑재하는 무인공격기를 개발하여 북한의 기습, 국지도발에 신속하고 융통성 있게 대응할 수 있다.
다만 이 대목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탄도미사일은 결코 만능의 무기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탄도미사일 사거리의 연장에 관하여 정치권과 학계, 언론 일각에서 제기했던 ‘안보 주권’ 논란도 이 점에 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것이었다.
탄도미사일의 최대 강점은 로켓 엔진이 제공하는 빠른 비행속도를 앞세워 적의 방공망을 뚫고, 신속하게 적 영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간단히 말해서 한반도의 어느 지역이든지 발사 후 3∼5분의 짧은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탄도미사일은 포물선 형태의 고정된 궤도로 비행하므로 정확성에 분명 한계가 있다. 아무리 고성능의 탄도미사일이라고 하더라도 오차범위가 수십m 이내에 달할 정도다.
이에 비해서 제트 엔진을 통해 비행궤도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순항미사일은 ‘적 지휘소의 창문을 명중시킬 정도’, 즉 오차범위 약 10m 안팎의 정밀타격이 가능하다. 고도의 정확성이 요구되는 적의 지휘통제 시설, 지하 군사기지의 출입구 등을 공격하는 데 탄도미사일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이미 한국은 지난 4월 북한 영토 전체는 물론, 주변국 내륙 지역까지 공격할 수 있는 사거리 1000㎞ 이상의 국산 순항미사일 ‘현무-3’을 공개한 바 있다.
앞으로 군 당국은 정확성보다는 신속한 대응, 광역적인 제압이 요구되는 북한의 특정 표적들을 겨냥하여 탄도미사일을 배치, 운용해야 한다. 여기에는 휴전선 전방 배후의 대규모 야전 기동부대, 지상 방공전력, 주요 공군기지, 그리고 이동식 탄도미사일 발사대 등이 포함된다. 순항미사일, 공대지 정밀유도폭탄 등 탄도미사일의 기술적인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무기들이 존재하는 이상, 굳이 탄도미사일로 모든 핵심 표적들을 공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앞으로 5년 동안 2조5000억원 이상을 투입하여 900기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추가 확보한다는 계획도 재검토·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김재엽 한남대 교수 국방전략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