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구미 불산참사

입력 2012-10-10 18:35

인도 중부지역에 보팔(Bhopal)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때는 1984년 12월 3일이다. 이날 새벽 0시30분쯤 최악의 유독가스 유출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른바 ‘보팔 참사’다.

구(舊)시가지 북서쪽 공업지구에 있던 미국계 다국적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공장에서 화학물질 저장 탱크가 터져 치명적인 독가스로 알려진 포스겐과 메틸이소시안이라는 유독가스가 인구 밀집지역으로 흘러들었다. 사망자 통계는 지금도 정확하지 않지만 무려 3만명 가량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0만명이 실명하거나 호흡기 장애를 일으켰다. 기형아가 출산되는 경우도 잦아졌다. 자연생태계 역시 훼손됐다. 이처럼 피해가 컸던 이유는 회사에서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조기경보 체계도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유령 도시’로 변해버렸으나 피해 보상은 미미했다. 5년여에 걸친 법정 싸움 끝에 인명 피해가 큰 가족의 경우 가구당 2200달러가 지급됐을 뿐이다. 미국이 유니언 카바이드사 최고 경영자에 대한 신병 인도를 거부해 처벌하지도 못했다.

지난달 17일 발생한 불산가스 누출사고 여파로 요즘 경북 구미가 ‘공포의 도시’로 변한 느낌이다. 5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했고, 5700여명이 입원하거나 치료받았다. 보금자리를 떠난 주민도 수백명에 달한다. 농작물과 가축 피해도 크다.

경찰 조사 결과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탱크로리의 불산가스를 저장 탱크로 옮기는 과정에서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급하게 작업하다 사고가 일어났다. 더욱이 구미시는 사고 발생 하루 만에 사실상 상황 종료를 선언하고,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10월 1일까지 추석 연휴를 즐겼다. “즉시 소석회를 살포하라”는 환경과학원의 경고도 새겨듣지 않았다. 정부는 뒤늦게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주민들이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보이며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지자체나 정부에서 주민들을 조속히 안전지대로 대피시키는 등 적절한 조치를 제때 취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난 정도로 너무 소홀히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 지적처럼 ‘불산 재앙’에 대한 대응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안전 불감증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사고를 일으킨 휴브글로벌 구미공장 대표 등에 대한 사법처리 외에 늑장대처에 대한 문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