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한·중 추억의 라이벌전

입력 2012-10-10 17:52


어느 시대든 ‘일생의 라이벌’은 늘 존재했다. 평생을 두고 피해 갈 수 없는 상대. 대표적인 예로는 1960∼1970년대 일본 바둑계를 주름 잡았던 사카다 에이오 9단과 후지사와 슈코 9단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뒤를 이어 80년대를 좌지우지했던 조치훈 9단과 고바야시 고이치 9단, 또 한국으로 건너와 수백 판 넘게 대결을 펼쳤던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의 끈질긴 승부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 한국 바둑의 70, 80년대는 ‘조서 시대’라 불린다.

그 후 어린 이창호의 등장으로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은 사제지간인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대결이 이어졌다. 그리고 세계대회가 활발해지며 한국과 중국의 대결도 치열해졌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이창호에게 많은 중국기사들이 도전했지만 결국 이창호의 벽을 넘어서진 못했다. 그럼에도 이창호의 라이벌이 있다. 동갑내기(1975년생) 기사로 86년 같은 해에 입단했고 97년부터 3년 동안 중국랭킹 1위를 지키며 많은 승부를 펼쳤던 창하오 9단을 당시의 라이벌로 꼽을 수 있다. 물론 상대전적은 이창호가 25승10패로 압도적으로 앞서 있지만 라이벌이란 규정은 단지 성적으로만 말할 수 없는 법이다.

최근에는 한·중 라이벌 대결로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을 꼽지만 그때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바둑 팬들이 많다. 97년 한·중 천원전에서 처음 만나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그들의 승부가 보고 싶고, 이창호를 넘어서지 못했던 창하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해 중국에서 2012 리우저우 원미아오배 세계바둑 정상 쟁탈전이 열렸다. 이벤트 대회로 이창호와 창하오의 3번 승부로만 펼쳐졌다. 제한시간 2시간, 1분 초읽기 5회로 진행되며 우승 30만 위안(약 5400만원), 준우승 15만 위안(약 270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상금이 걸렸다.

지난 2일 중국 광시성 리우저우시에서 열린 1국은 예상대로 이창호의 승리로 끝이 났고, 다음날 이어진 2국에서는 라이벌전답게 창하오가 승리해 승부는 3국까지 이어졌다. 결승국인 3국은 2시간의 제한시간 없이 바로 초읽기로 진행됐다. 연이어 다음날 치러진 3국에서 이창호는 ‘역시 이창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완승을 보여주며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

이로써 두 기사의 승패 차이는 더 벌어졌다. 시간이 흐른 만큼 다시 한번 이창호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던 중국으로서는 상당히 아쉬운 결과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어도 통산 140회 우승을 차지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창호라는 존재의 벽을 넘어서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