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나와라” 마구잡이 국감 출석 요구에… 업계 “글로벌 경영 발목 잡나” 한숨

입력 2012-10-09 18:56


여야가 국정감사에서 대기업 오너들을 무차별적으로 증인으로 채택해 또 다른 포퓰리즘이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다니며 분주하게 경영 활동을 하는 이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 때리기 일환으로 무리한 증인 채택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는 11일 열리는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에게 증인 출석을 통보했다. 대형마트 영업규제, 골목상권 침해 등에 대해 따져 묻겠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10월 말까지 일본, 태국, 미국을 연이어 방문할 예정이다. 11일에는 일본 내 최대 여행그룹인 JTB의 다가와 히로미 사장을 만나 세계 최대 민간 여행기구인 WTTC 총회의 2013년 한국 유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다. 이어 태국에서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를 만나 현지 진출에 대한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9일 “신 회장은 올해 14회 해외에 다녀왔고 연말까지 러시아, 영국 등의 해외 출장이 이어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정용진 부회장도 베트남에서 글로벌 소싱을 위한 양해각서를 현지 업체와 체결할 예정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13일쯤 귀국할 예정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미 3개월 전부터 계획돼 있던 출장이었다”면서 국감 증인 채택으로 해외 기업들과의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지선 회장은 아웃렛 사업 진출과 현장을 살펴보고 국감이 끝난 이후 귀국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8일 열린 지식경제위원회에서는 해외 출장 중인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최병렬 이마트 대표, 노병용 롯데마트 대표 등의 출석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정치인들이 기업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무턱대고 오너의 출석을 요구해 난감해하고 있다. CEO가 아닌 총수를 굳이 부르는 것은 ‘보여주기 식’으로 국감을 몰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업계 관계자는 “어떤 출장인지 같이 동행이라도 하자고 요구하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전 세계 기업들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마당에 격려는 못해줄 망정 정치권은 꼬투리 잡기만 한다”고 격양된 목소리를 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말 문제 해결을 위해 출석을 요구하는 건지 되묻고 싶다”면서 “오너들을 불러놓고 범죄자 취급하면서 굴욕감을 주는 국감장에 나오라고 강요하면 누가 나가고 싶겠는가”라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