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선 효자 국내선 찬밥… 왜건 잔혹사

입력 2012-10-09 18:57


유럽에선 효자인데 한국에선 아직 찬밥이다. 현대자동차의 중형 왜건 i40를 두고 하는 말이다. 왜건은 미국 서부개척시대 역마차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낸 차다. 세단과 달리 차의 지붕이 후단까지 수평으로 쭉 뻗은 형태다.

현대차가 8일 밝힌 i40의 출시 1년 성적표엔 왜건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판매된 i40는 지난 9월까지 국내에서 총 8923대가 팔렸다. 하지만 이 가운데 순수 왜건은 4702대뿐이며 나머지 4221대는 지난 1월 i40에 추가된 세단의 실적이다. 9월에는 i40 왜건이 425대, i40 세단은 1136대 팔렸다. i40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왜건이 후발 세단 모델에 역전당한 지 오래다.

유럽에선 다르다. i40는 울산 공장에서 만들어 선적해 유럽으로 수출하는데 오리지널 왜건만 지난 8월까지 2만1128대를 팔았다. 이는 현대차가 유럽에서 파는 물량의 11.1%다. 유럽에서 만큼은 현대차의 대표 중형차가 i40 왜건이다.

유럽에서 왜건은 ‘직장맘’의 차다. 일반 세단과 사이즈가 같아 운전하기 쉽다. 트렁크 윗부분이 실내공간과 합쳐져 짐을 무한정 넣을 수 있다. 아이를 학교에 태워주고 일터에 갔다가 퇴근길에 다시 아이를 태우고 마트에 들러 장보기까지 할 수 있는 용도로 최고다.

반면 한국에서 왜건은 수난을 겪고 있다. 현대차 변화의 의지가 담긴 i30 가운데 왜건인 i30cw는 지난해 9월 생산을 중단했다. 아반떼는 국내 최고 브랜드지만 1995년 선보인 왜건형 아반떼 투어링은 쉽게 볼 수 없었다. 98년 나온 기아자동차의 파크타운 역시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수입차도 마찬가지다. BMW 520d는 국내 판매 1위 모델이지만 왜건형 투어링 모델은 지난 6월 첫선을 보인 후 고작 32대만 팔렸다. 스웨덴에서 차종의 절반을 왜건으로 파는 볼보도 올해 8월까지 대표 왜건 V60를 국내에서 46대밖에 못 팔았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세단에서 왜건 해치백 등 다양한 스타일을 건너뛴 채 곧바로 스포츠유틸리티(SUV)로 넘어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i30로 해치백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켰듯, i40로 왜건이 세단·SUV와 어깨를 나란히 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