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삶의 질과 보건복지 뭐가 다른데
입력 2012-10-09 21:41
“세상은 하이브리드 시대로 내닫고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부처별 각개 약진하나”
‘새로마지 플랜’이란 게 있었다. 아니 지금도 존재한다. ‘새로마지’란 참여정부가 추진한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의 별칭인데 ‘새로’운 탄생과 인생의 ‘마지’막을 뜻한다. 이른바 한국판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이다.
지금은 1차 계획(2006∼2010)에 이어 2차 계획(2011∼2015)이 진행 중이다. 올해로 7년째를 맞았지만 ‘새로마지 플랜’이란 말을 기억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홍보 부족, 특히 참여정부가 이름붙인 계획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가 정책 추진을 소홀히 한 것도 한 원인일 터다.
더 근본적인 요인은 부처간 폐쇄주의 때문일 것이다. 당초 참여정부는 ‘새로마지 플랜’을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선도하도록 했으나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산하로 격하됐고 ‘새로마지 플랜’ 역시 복지부의 영역으로 위축됐다.
‘새로마지 플랜’은 국가적 사업이나 추진 주체는 복지부라는 점에서 타 부처는 해당 사업에 대해 강 건너 불 보듯 했을 뿐이다. 하지만 부처마다 저출산·고령화 관련 이슈를 무시할 수 없었던 까닭에 나름 대책에 골몰했다. 문제는 각 사안에 대해 부처별로 따로따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저출산·고령화 이슈 일반은 복지부가 맡지만 농촌의 고령주민 및 다문화가족의 복지는 농림수산식품부, 다문화가족의 육아 및 교육은 여성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 고령자 취업은 고용노동부가 각각 맡아야 한다는 식이다. 공공서비스 주무부처가 이렇듯 뒤엉켜 있으니 효율성 저하는 피할 수 없다.
그중 대표적인 게 농어촌 복지다. 농어촌 삶의 질과 관련해서는 농식품부가, 농어촌 보건복지는 복지부가 각각 특별법을 제정, 운영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주도한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특별법’과 복지부가 주도한 ‘농어촌 보건복지 특별법’ 모두 2004년 마련됐고, 특별법에 입각해 각각 1차 계획(2005∼2009)을 거쳐 2차 계획(2010∼2014)이 진행 중이다.
‘삶의 질 향상’과 ‘보건복지’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도 불분명하지만 각 부처가 별도의 예산을 책정해 8년째 각개 약진을 계속해오고 있다. 중앙부처에서는 예산 편성·운용이 그나마 구분되겠지만 그것이 각 지방자치단체에 와서는 뒤죽박죽 얽히기 십상이다. 깔때기의 넓은 주둥이와 좁은 출구의 모습이 연상된다.
오늘날 세계는 통·융합을 뜻하는 하이브리드 시대로 내달리고 있으며 현안을 인식하는 방식에서도 온갖 인과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전제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s) 접근법이 대세를 이룬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부처별 각개 약진에 머물러 있다. 효율성은 염두에 없다.
다행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다음 달부터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 시행과 더불어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된다. 이에 발맞추어 각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저출산·고령화 관련 모든 이슈에 대해 통괄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볼 수 없는 빠른 고령화 속도, 가장 낮은 출산율은 기존의 틀로서는 대응하기 어렵다. 한국사회가 이미 100세 시대에 직면하고 있고 외국인 신부들이 늘면서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의 인식과 제도는 고작 80세 시대, 단일문화사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개별 이슈에 대한 통괄 대응은 부처간 다툼의 여지가 적지 않다. 하지만 다문화가족의 양육 및 한국어 교육 등은 교과부가, 농어촌 삶의 질과 복지는 농식품부가 주관하는 등 이슈별로 주무부처를 고루 지혜롭게 배분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때 이슈별 전담부서에는 유관부처 공무원들이 합류하는 것을 전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의 효율성, 궁극적으로 공공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위한다면 부처 이기주의는 내려놓아야 할 때다. 이는 앞으로 5년 동안 정부를 운영할 대선 후보들이 누구보다 명념할 사안이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