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이석] 상실감의 상처 없는 복지를

입력 2012-10-09 18:43


웅진의 법정관리 소식, 하우스푸어 문제, 청년실업 등 그리 반갑지 않은 제목들이 신문의 경제면을 장식하고 있다.

유럽,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돈을 풀고 적자재정 정책을 실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의 끝이 쉽게 보이지 않고 있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까닭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수출 전망도 밝지 않아서 유수한 경제전망 기관들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전망을 3%대로 낮춰 잡고 있다.

물론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도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처음으로 국가신용도를 앞서고, 삼성전자가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우리 경제는 비교적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오래 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어려움을 정치권에 기대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민심을 너무나 잘 읽고 있는 정치권에서 5년간의 정당들 명암이 갈릴 대선을 앞두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선물을 개발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여기에서 명심할 점은 줬다가 뺏는 꼴이 되는 선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커다란 상처를 안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보통 오래 소지하던 물건이나 권리에 대해 일정한 애착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를 잃거나 빼앗기면 격렬하게 저항한다. 새 물건으로 보상해도 심리적 상실감이 쉽게 메워지지 않을 때도 있다. 심지어 착오로 자신에게 잘못 전달된 선물을 돌려보낼 때에도 그 선물이 자신에게 보낸 것으로 오해한 경우에는 비록 정당한 권리가 없지만 여전히 아쉬워할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선물이라 여기고 제공했지만, 실제로는 상실감만 안긴 사례들은 꽤 많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기간이 2년이 넘으면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하는 비정규직법안도 그런 사례에 속한다.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되자 2년 가까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사람들은 곧 정규직으로 전환될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기업들 사정은 달랐기에 2년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을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강력한 저항이 있었다. 손에 잡힐 것 같았던 정규직이 허공으로 사라졌기에 비정규직에서 해고된 사람들의 좌절감은 그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것이어서 원래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수 없더라도 사람들은 조금 더 주는 것은 반기지만 줬다가 뺏으면 특별히 더 화를 낸다. 복지 지출의 비가역성은 논리적 필연성은 아닐지라도 경험철칙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프랑스 같은 소위 복지 선진국에서도 재정 압박을 견디지 못해 결국 줬다가 일정 부분을 다시 뺏는 연금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다란 실망이 따랐고 엄청난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인구는 많아지고 노인 인구를 부양할 청장년층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적연금의 수급개시 연령을 연장하고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것이 연금재정 압박에 대응하는 거의 유일한 해법이라는 사실을 프랑스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논리적 이해가 박탈감을 해소시켜 주지는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유아 무상보육과 관련해 정치권의 약속과 정부의 안이 달라지는 등 한바탕 해프닝이 있었다. 사람들은 어쩌면 원래 받을 권리를 가지지 않았던 것에 대해 조금 주거나 주지 않더라도 큰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줬다가 회수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각 정당은 상대 정당에 비해 자신들의 정책이 더 지속가능한 것임을 유권자들에게 잘 보여줬으면 좋겠다. 유권자들도 나중에 상실감으로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큰 공짜 점심을 약속하는 정당일수록 더 경계해야 할 것이다.

김이석(시장경제제도硏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