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변영인] 세월의 강가에 서서

입력 2012-10-09 18:43


각급 학교의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온다. 초가을 신선함 속에서 한 무리의 싱그러운 젊은이들이 지나간다. “시험이 없는 나라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며 조잘대는 소리가 들린다.

내 나이. 60객이 되어 간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야학, 천막 학교가 많았다. 배울 수만 있다면 달려가서 배웠고, 낮에는 기계 앞에서 손을 찢겨가며 기술을 익혔고, 재봉틀 앞에서 사정없이 졸음을 이기느라 다리를 꼬집었던 젊은이들이 많았다. 산업 역군이었던 여공들.

단발을 하고 학교 다니는 친구들은 그런 여공들의 조심스러운 부러움을 눈총으로 받으며 얼룩진 우월감을 느끼곤 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바로 지금의 50∼60대이다. 이제 이들은 20대의 장성한 자녀들을 두고 있다.

그 자녀들이 피자와 햄버거를 찾으며 입맛을 바꾸는 것을 이해하지만, 가슴 한 구석에는 배고팠던 어린 날들의 아픔이 저며 온다고 한다.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 즉 짜증과 분노가 발산이 안 될 때 넋이 나간 상태가 되기 싶다. 오늘날 가정에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격정적 분노와 감정폭발을 주로 엄마에게 투사한다.

그러나 우리의 청소년 시절에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의 고통으로 우리가 울고 싶을 때 울음을 토해 낼 상대도 장소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은 표현돼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다. 공부에 지친 우리의 자녀는 부모보다 더욱 더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다. 교육계 전문가들의 외침처럼 “너희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해한다”라는 표현이 필요할 때다.

지금의 50∼60대에게는 이런 표현들이 낯 뜨거운 쑥스러움임을 부인할 길이 없다. 자식을 바라보며 못 받았던 사랑과 설움이 북받쳐 오를 때 묵묵히 그것을 삼키느라 남모르는 곤욕을 느낄 때에도 자식은 속으로만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배운 세대가 오늘날의 50∼60대다. 나의 상담실에 날아온 편지에서 한 내담자의 고백이다.

중년의 강폭이 넓어지는 세월의 강가에 서니 어느 날 갑자기 강둑의 다리가 끊어져 버렸다. 50∼60대의 나이를 가진 부모들은 어디에서 서성이는가. 이 시대의 효자효부의 마지막 모델이며, 10여년 전부터 유행한 구조조정의 1순위였던 그들이 지금의 부모요, 이 시대의 50∼60대인 것이다.

이제 이 세대와 다음 세대가 서로 보듬어 긍휼히 여겨야 할 것을 확인해야 하리라.

변영인 (동서대 교수·상담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