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클링을 아시나요… 버려지는 옷이나 쓰던 가구 가치있는 제품으로 재탄생
입력 2012-10-09 18:02
영화배우 문소리가 지난 4일 개막된 부산국제영화제에 ‘개념 드레스’를 입고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개막식에서 문소리가 입은 순백의 드레스는 남성 셔츠와 낙하산을 재활용해 만든 드레스였다. 평소 환경 보호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서울환경영화제 에코 프렌즈’로도 활동했던 문소리는 영화제 기간 중 자연과 환경을 생각해 이월상품으로 버려지는 옷들을 새롭게 디자인해 만든 옷을 3벌 선보였다.
버려지는 옷이나 쓰던 가구에 전문가의 창조적인 손길이 더해져 가치가 있는 것으로 다시 태어나는 업사이클링(upcycling) 디자인들이 최근 뜨고 있다. 세계적인 디자인 행사 런던디자인페스티벌(9월 14∼23일)이 올해 트렌드로 꼽은 것도 업사이클링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젊은이들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명품 반열에 오른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이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1993년부터 트럭용 방수 천막이나 에어백, 자동차 안전벨트 등을 재활용해서 가방을 만들고 있다. ‘리바 1920’‘박스터’ 등의 업사이클링 가구 브랜드는 가구의 본고장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도 명품으로 꼽히고 있다.
국내 패션이나 가구업계의 업사이클링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눈길 끌만한 아이템들을 내놓으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해 가고 있다.
문소리의 드레스를 제작한 ‘래코드’는 패션 기업 코오롱인더스트리 FnC가 자체 재고를 활용하기 위해 올봄 출범한 브랜드. 래코드의 한경애 이사는 “일반적으로 3년 차 재고들은 브랜드 관리를 위해 소각되는데, 연간 약 40억원에 달한다”면서 자연을 위한 순환을 만들고 낭비가 아닌 가치 있는 소비를 제안하기 위해 출범했다고 밝혔다.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원래 옷보다 더 멋있는 옷이 탄생한다. 한 디자인에 3,4벌씩만 생산해 희소성도 있다.
2008년부터 폐자원을 활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리블랭크’는 사회적 취약계층들과 일자리를 나누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탤런트 이민호, 에픽하이, 걸그룸 에프엑스 등이 이곳의 옷을 입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팬들이 이들이 입은 옷과 똑같은 옷을 찾았지만 헛수고. 디자이너들이 직접 버려진 옷이나 가죽, 현수막 등을 수거해 옷과 가방 등의 소품을 만들다보니 똑같은 게 나올 수 가 없다. 최근 소비자가 입던 옷을 갖고 오면 가방을 만들어 주는 클로젯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앞으로 옷으로 모자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할 예정이다.
‘터치포굿’은 현수막을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로 2009년부터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값싼 나일론으로 만든 백으로 명품 브랜드가 된 ‘프라다’가 경쟁 상대라고 큰 소리 칠 만큼 디자인과 품질이 뛰어나다.
가구 브랜드도 있다. ‘매터앤매터’는 인도네시아의 오래된 집과 화물을 운송하던 트럭, 어선 등에 쓰였던 나무들을 해체해 얻은 목재로 가구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4월 첫선을 보인 이 브랜드에선 의자 책상 책꽂이 등 20여 가지의 제품이 나오고 있다. 자연스럽게 벗겨진 페인트 자국과 못자국도 있고 홈이 파여져 있지만 인도네시아의 습기 등을 견뎌내면서 단단해져 내구성이 뛰어나다.
‘아트 퍼니처’를 표방하는 ‘패브리커’는 낡은 가구에 못 쓰게 된 패브릭(섬유)을 입혀 독특한 텍스처를 가진 가구를 만들고 있다. 2009년부터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패브리커는 김동규·김성조, 두 디자이너의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김동규씨는 “버려진 것, 쓸모없는 것을 값어치 있게 만드는 업사이클링 작업은 해외에서 더 가치를 평가해준다”고 했다.
사실 국내의 일반 소비자들은 버려진 옷이나 가구로 제작한 업사이클링 제품 가격을 듣고는 놀라는 편이다. 래코드의 재킷류는 60만원대다. 리블랭크의 클로젯 프로젝트도 6만∼12만원의 비용을 내야 한다.
리블랭크 채수경 대표는 “헌옷을 해체하고 디자인해 제작하는 과정이 어렵고 복잡해 제작비 자체가 많이 들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선지 국내에선 아직 시장이 넓지 않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창조성과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값어치 있게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