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아찌아족에 한글 보급한 한국인 교사 정덕영씨 재정난으로 ‘세종학당’ 철수
입력 2012-10-08 22:20
“현지 교사 양성 등 끈기있는 지원 이뤄져야”
세계 최초로 한글을 공식 표기 문자로 도입한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 그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세종학당’이 지난 8월 31일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철수하면서 정덕영(51)씨도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씨는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보급한 유일한 한국인 교사다.
세종학당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어세계화재단이 세계 각지에 설립하는 한국어 교육기관으로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에는 경북대와 인도네시아 무함마디아 부톤대가 협력해 지난 1월 30일 개원했다. 그러나 운영 과정에서 경북대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어 7개월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당장이라도 다시 가야 할 것 같은데….”
8일 만난 정씨는 아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2010년 초 훈민정음학회의 찌아찌아족 1호 한글교사로 파견된 그는 같은 해 말 귀국했다가 올해 초 세종학당 교사로 바우바우시를 다시 찾았다.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일은 단순히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 이상이었다. 정씨는 “한 언어의 소멸은 그 언어가 일궈온 문화·사상·역사의 소멸을 뜻한다”며 “문자소멸 위기에 있던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보급한다는 것은 역사와 문화를 보존시킨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씨는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노트, 연필, 지우개 등도 보급해줘야 했지만 돈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언어장벽도 힘든 문제였다. 한글로 사전을 만들 수 있도록 찌아찌아족의 단어 채집 등 현지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무상으로 부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이 절실했다.
정씨는 지난달 훈민정음학회와 찌아찌아족을 위한 중급 한글 교과서 ‘바하사 찌아찌아2’ 집필을 끝냈지만 현재는 교재를 보낸다 해도 무용지물이다. 교원 양성 프로그램도 미진했던 탓에 현재 바우바우시에는 찌아찌아족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칠 현지 교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씨는 “우리나라는 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했는데도 한문을 대체하기까지 몇 백년의 시간이 걸렸다”며 “찌아찌아족도 새 문자라는 대단한 변화를 겪는 건데 7만명의 부족에게 선생님 한 명 파견해 쉽게 되리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무리였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곳에서 다시 한글교육을 시작한다면 정부와 지자체는 ‘시작’에만 의미를 두지 말고 끈기를 갖고 인적·물적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문화부 관계자는 “경북대가 사정상 철수해 세종학당을 맡을 다른 대학을 물색하고 있다”며 “새로운 대학이 정해지는 대로 세종학당을 다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