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론조사에 휘둘리는 대선에는 미래가 없다
입력 2012-10-08 19:19
철학 신념 공약 분명한 후보자 선택하는 지혜 가져야
제 18대 대통령 선거일이 70여일 밖에 남지 않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유력 후보들이 무슨 정책을 제시했는지,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로 대표되는 여야 후보들이 시장이나 단체 집회 등에 나타나 얼굴 알리기에만 주력하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이나 이념은 아랑곳없이 통합이란 이름 아래 표만 된다 싶으면 마구잡이로 영입하는 행태도 변하지 않았다.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후보들이 번듯한 공약 하나 발표하지 않는 것은 이번 선거가 유례없이 여론조사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유력 주자들도 여론조사에 따라 지지세가 약한 지역이나 계층을 공략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아무리 정치가 여론에 따라 움직인다고는 해도 국가 미래의 비전 제시도 없이 지지율에만 목을 매는 것은 유권자에게 깜깜이 선거를 강요하는 것 밖에 안 된다.
무엇보다 선호도 위주의 여론조사는 후보자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크게 믿을 것도 아니다. 실제로 1936년 무려 유권자 1000만명에게 선호도를 물어 공화당의 알프레드 M 랜던 후보의 당선을 예상했던 미국 잡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여론조사 실패로 폐간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표본을 잘못 추출해 61%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했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다. 1948년에는 유명한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조차 현직인 트루먼의 당선을 예측 못하고 공화당 듀이 후보의 압승을 예상했다. 2차대전 직후라 도시인구가 늘어난 것을 감안하지 않은 할당표집 방법을 사용했다 대망신을 당한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4·11 총선에서 거의 모든 여론조사 기관이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압승을 잘못 예상한 것이 단적인 실패 사례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것이 여론일진대 여야 후보들이 나라를 이끌고 갈 구체적인 플랜은 말하지 않고 여론조사를 의식한 이미지 제고에 주력한다면 정상적인 선거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세수 확보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걷을 것이라든가,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위해 무상급식이나 보육은 기회를 봐서 줄이거나 없앨 것이라는 등 유권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말도 과감하게 하는 것이 나라의 장래를 책임지려는 후보의 자세 아닌가.
사정이 이런데도 여야 후보들은 가는 곳마다 입에 발린 선심성 약속만 남발하고 있다.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을 만나서는 대기업이나 재벌을 개혁해 고루 잘 살게 하겠다는 경제민주화를 입에 달고 산다. 경제·복지·일자리·교육에 관해서도 듣기 좋고 달콤한 원칙적인 발언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행여나 언짢은 발언을 해 지지율이 떨어질까 두려워서인가.
민주정치는 여론정치다. 따라서 국민들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턱대고 좋아하는 말만 하는 사람도 리더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당당하게 국정철학을 밝히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