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 대피” 방송직후 가스 밀려와… 구미 50대 부부가 전하는 긴박했던 순간

입력 2012-10-08 19:10


“희뿌연 불산가스 속에서 남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어요.”

멀쩡한 농작물들이 바싹 말라죽을 정도의 치명적인 가스도 생사를 초월한 부부애(夫婦愛)를 막을 수 없었다. 심병대(58)·이호례(55)씨 부부는 8일 경북 구미시 4공단 불산 누출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3시50분쯤 구미시 산동면 봉산1리 자신의 멜론비닐하우스에서 작업을 하던 심씨는 요란한 사이렌소리와 함께 ‘4공단에서 불이 났으니 즉각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들었다.

공단 화재여서 자신과 무관하다고 판단한 그는 작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불과 1∼2분 사이 희뿌연 연기가 비닐하우스 안으로 밀려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매캐한 냄새가 나고 눈이 따끔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자욱한 가스로 인해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긴급 상황’임을 감지한 그는 일단 반대편 산 쪽으로 무작정 뛰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집에 있을 아내 생각에 어느새 발걸음을 마을로 향했다. 그때는 쉽게 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그 시각, 집에 있던 아내 이씨 역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대피방송 직후 작업을 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가했는데 남편만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직한 남편이 틀림없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고 있을 것으로 여긴 이씨는 치명적인 불산가스 속을 내달렸다. 비닐하우스까지 1㎞의 길을 어떻게 달려갔는지 몰랐다. 10m 앞도 분간이 안 되는 불산가스 속에서 서로를 10여분간 애타게 부르며 찾았다. 가스를 마신 탓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이씨는 남편 심씨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고, 서로 만날 수 있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심씨는 아내를 보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여자”라고 면박을 줬다. 불산가스를 헤집고 같이 죽으려고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이씨도 “평생 가족들을 위해 성실하게 일해 온 남편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여서 그런 상황이 다시 와도 또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웃었다.

이 부부의 얘기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부부 간 사랑과 헌신을 보여준 미담(美談)으로 마을에 퍼지고 있다.

구미=김재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