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의약품 위원회’ 만들어 국가 차원서 관리해야
입력 2012-10-10 13:59
국민일보 쿠키미디어는 지난달 25일 ‘의약품에 대한 환자 접근성 강화-필수의약품 기준 점검과 대안 모색’을 주제로 11번째 ‘고품격 건강사회 만들기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는 현행 제도에서 필수의약품으로 지정 받기 어렵고 등재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환자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희귀난치성질환 치료제의 신약 등재를 위한 별도의 제도와 기준 완화 등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 보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편집자 주>
◇일시: 2012년 9월 25일 14시
◇참석자
유미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재등재부장)
서동철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신현민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
이재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진행: 김민희 쿠키건강TV 아나운서
◇방송: 10월 10일 20:20∼21:50 (연출·홍현기 쿠키건강TV PD)
-필수의약품 중에서도 희귀필수의약품을 별도로 관리해야 할 이유가 있나. 현재 희귀필수의약품의 시장 규모는?
◇신현민=희귀난치성 질환의 특징 때문이다. 매우 희귀하고 드문 질환들이기 때문에 치료약 개발 자체가 힘들고 개발해도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아 국내 제약사에서는 신약 개발을 못하고 있다. 외국 약제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희귀난치성 질환수는 최근 7000여 종으로 상향됐지만 개발된 약은 전 세계적으로 300여 개에 불과하다. 희귀질환자가 계속 증가하면서 환자의 접근성을 목표로 정부가 별도로 관리해 환자가 적시에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미영=희귀필수의약품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250억∼300억원으로 보고 있다. 연간 약제비 13조원에 비하면 크지는 않다. 필수의약품은 진료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약제 기준에 따라 대체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질환, 소수 환자, 임상적 효과가 입증된 약을 급여로 등재한다. 기존 약들과 비교해 임상 효과가 있는지 판단해 비용 가치가 인정되면 보험 적용 여부를 검토한다.
-허가 받은 희귀필수의약품 수는 얼마나 되나. 지정 조건이 까다롭다는 의견도 있다.
◇이재호=239개가 외국에서 수입한 약이고 20개 정도가 국내 약이다. 국내 제약사가 희귀의약품 개발에 뛰어들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지정 조건은 정책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의약품비 비중이 높고 재정 파이가 늘어나지 않아 실질적으로 건보재정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지정 조건이 생겼다. 가이드라인이 시대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데 법이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다.
◇신현민=필수의약품이 되려면 4가지 기준에 충족돼야 하는데 이 조건에 맞는 약제가 과연 몇 개나 있겠는가. 문제는 약이 개발돼도 환자에게 공급이 안 되거나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다. 희귀질환자들은 언젠가는 치료약이 개발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사는데 지정 조건 때문에 약이 개발돼도 공급이 안 되기도 한다.
◇서동철=국내 희귀의약품 기준은 외국 기준과 큰 차이가 없다. 단지 국내 등재가 힘든 것은 경제성 평가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2007년 이후부터 신약을 등재할 때 회사에서 요구하는 값이 적당한지, 임상 효과가 있는지에 따라 약의 가치를 평가한다. 외국의 경우 희귀의약품을 전담하는 기구가 따로 설치돼 있어 자체 심사 과정을 빠르게 하는데 국내는 그런 제도가 없다. 결국은 예산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신약의 빠른 도입을 위해 경제성 평가 면제 등 완화된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유미영=지난해 정부가 약가를 개편하면서 신약에 대해 적절한 가격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진료상 필수약제의 기준에 속하지 않더라도 환자 접근성을 위해 등재가 필요한 약은 추가적인 평가 방법론을 제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신현민=필수의약품의 지정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은 몇 개 약제뿐이다. 4가지 조건을 포괄적으로 넓힐 필요성이 있다. 4가지 조건 중 2∼3가지를 충족시키는 약제에 대해 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
◇유미영=4가지 조건 중에서 임상적 개선은 희귀질환자의 수가 적어 입증이 쉽지는 않다. 때문에 한두 가지 조건이 미흡하더라도 환자 접근성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등재가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재정 때문에 비용 효과성을 보지 않고는 등재하기 어렵다. 당장 환자들이 반드시 써야한다면 효과에 대한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한시적인 조건부 급여를 하는 방법이 있다.
◇서동철=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정부 재정이다. 어떤 질병을 가진 환자한테 우선권을 주느냐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영국처럼 경제성 평가를 할 때 질병을 앓는 환자가 직접 참여하고 학계, 정부 등이 포함된 공동위원회를 만들어 논의를 통해 풀어 나가야 한다.
-희귀필수의약품의 접근성 강화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이재호=국내 제약사는 실질적으로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 신약 개발의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희귀의약품을 개발하는 것은 무리다. 다행히 줄기세포나 바이오의약품은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다. 이런 분야에서 희귀난치성질환 의약품이 개발될 수 있도록 초동 단계부터 정부가 개입해 지원하고 허가에서 개발까지 같이 가야 한다. 현재 희귀의약품 공급 중단 보고 시점이 10일 이내인데 최소 60일, 90일로 보고 시점을 늘려 안정적인 대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희귀난치성 질환 기금 조성도 법률로 근거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서동철=희귀의약품을 취급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외국은 위원회를 설치해 희귀의약품 지정이 되는 약은 펀드를 이용해 환자들에게 빠르게 접근성을 인정해준다. 우리나라는 복지부 예산 말고 다른 부서의 예산을 활용해도 된다. 환자수가 적기 때문에 정부 예산으로 충분히 통용이 가능하다. 국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신현민=모든 약을 등재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환자 입장에서 개발된 약이 있다면 충분히 공급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이 확대되고 제도가 개선됐으면 한다.
◇유미영=희귀난치성 질환 약제에 대한 환자 접근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복지부와 협의해 나가겠다. 복지부, 심평원, 건보공단이 여러 가지 연구를 하고 있는데 결과가 나오면 지금보다 나은 제도가 결정될 것이다.
※필수의약품이란?
현재 필수의약품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나 정의는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1975년에 제창한 개념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각국의 개발상황에 맞는 필요 최저한의 의약품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필수의약품을 지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약품의 접근성과 정책적 상황을 고려해 시장에서 폐지되지 않도록 원가를 관리하는 품목과 저가여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관리되는 품목으로 구분했다. 필수의약품은 공급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는 마약성분 의약품, 경제성 평가 측면에서 치료효과는 좋지만 생산성이나 수요가 적은 약의 사용을 장려하거나 원가를 보전해주는 퇴장방지의약품과 저가의약품이 있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소수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약이라고 판단되는 희귀필수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정리=김성지 쿠키건강 기자 ohapp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