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청와대
입력 2012-10-08 18:35
청와대 터는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경 이궁(離宮)이 들어섰던 곳이다. 조선 건국 후 한양 천도 때는 비좁은 이곳 대신 바로 남쪽에 경복궁을 짓고 이 자리는 연무장과 과거시험장으로 활용했다. 조선조 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청와대 지역인 북원(北苑)에 경무대(景武臺) 등을 세우고 문과시험 등 국가행사를 실시했다. 일제는 남산 왜성대(倭城臺)가 협소하다는 핑계를 대 1926년 경복궁에 총독부 청사를, 이듬해 청와대 자리에 총독 관저를 세웠다. 해방 직후 미국 군정장관 관저로 사용되던 이곳을 넘겨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란 이름을 되살려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했다.
청와대를 두고 그동안 수차례 개명 논란이 있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1960년 4·19혁명으로 집권한 윤보선 대통령은 이승만 정권의 권력을 상징하던 경무대란 명칭을 청와대로 바꿨다. 당시 이성계가 조선 창건 당시 명나라에 제시했던 ‘화령’이란 국호를 딴 화령대(和寧臺)도 대안으로 제시됐으나 우리 고유의 문화인 청기와(靑瓦)를 붙이기로 결정됐다.
63년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도 황제를 상징하는 ‘황(黃)’을 따 황와대(黃瓦臺)란 이름을 쓰자는 조언을 들었다. 그러나 청와대로의 개명에도 반대였던 박 대통령은 이를 일축했다. 부인 육영수 여사는 청와대를 ‘White House’를 본떠 ‘Blue House’라 부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대외 문서에 ‘Chong Wa Dae’로 표기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안철수 대선 후보가 7일 청와대를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며 대통령집무실 이전 공약을 내놓았다. 선거 단골메뉴 가운데 하나다. 2002년 대선 당시엔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청와대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2006년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경선 때 이계안 전 의원은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하고 옛 한양을 복원하자고 주장했고, 올해 새누리당 대선 경선 때도 이재오 의원이 청와대를 박물관으로 개방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전으로 청와대가 권위주의를 벗고 국민과 온전히 소통할 수 있게만 된다면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저 일제 총독관저 자리였고 누대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이전하자는 것이라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숱한 비용이 들어가는 이벤트보다 정치 지도자들 스스로 태도를 바꾸는 게 먼저다. 청와대 이전론이 자칫 세종시처럼 끝없는 국론분열의 불씨가 되는 것은 가장 우려스런 일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