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그리운 마음
입력 2012-10-08 18:34
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妾恨多
若使夢魂行有迹
門前石逕已成沙
근래의 안부가 어떠한지 여쭈어 봅니다
창문에 달빛 비칠 땐 못 견디게 그리워요
만약 오고 가는 꿈길에 자취가 남는다면
님의 집 문 앞 돌길이 모래가 되었을 걸요
이옥봉, 이옥봉행적(李玉峯行蹟) ‘오재집(寤齋集)’
그리움을 표현한 한시 중에 이만한 작품을 찾기 어렵다. 쉬운 언어에 담은 뜻이 깊다. 이옥봉은 선조 때 상주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한 이봉(李逢)의 딸로, 남명 조식의 문인인 조원(趙瑗, 1544∼1595)에게 매료되어 자청하여 후실이 되었다. 그녀는 시재가 아주 출중하여, 남편이 소도둑으로 몰린 이웃집 여인의 하소연을 듣고, ‘이내 몸이 직녀가 아닐진대 어찌 낭군이 견우가 되오리까(妾身非織女, 郎其是牽牛)’라는 시를 지어주었다가, 함부로 국사에 관여한다는 남편의 질책을 받고 시가에서 쫓겨났다.
몇 년 뒤에 이 시를 지었는데, 그리운 마음이 구절마다 애절하여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그러나 조원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현손은 ‘가법이 매우 엄함을 알 수 있다’라고 평하였다.
진귀한 시화(詩話)를 많이 수록한 도종의(陶宗儀)의 ‘설부’에는 이와 비교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곽휘(郭暉)라는 선비가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만 백지를 봉투에 넣어 부쳤다.
아내가 답서로 보낸 시의 한 대목이 이렇다. ‘당신이 나를 너무도 그리워하여, 그리워하는 마음 말없이 담았군요(應是仙郞懷別恨, 憶人全在不言中).’ 이 여인이 남편의 실수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시 안에 가득하다. 한 사람은 간절한 그리움도 물리치고 한 사람은 실수도 좋게 이해하였다. 상대를 보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완연한 가을이다. 찬바람이 불어 하늘은 맑고 단풍은 물들어 간다. 사람의 마음도 고독감에 물들고 그리움에 흔들린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라는 말로 위로가 될까.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학문적 견해나 사회적 신념 등으로 고독한 사람은 이 가을 더욱 외로울지도 모르겠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