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용현 (5) 복은 불행과 함께… ‘巨富 욕심’에 회사 부도

입력 2012-10-08 18:02


사탄의 가시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사람은 언제 시험에 들지 모른다. 나 역시 건설업을 하며 수차례 사탄의 방해공작에 시달렸다. 섀시 공사로 승승장구하자 내 신앙생활은 조금씩 무너져갔다. 주일 성수는 했지만 하나님과의 거리는 이전보다 상당히 멀어졌다. 내가 누리는 물질적 축복이 당연한 것이라는 착각,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내게 이런 축복을 내릴 의무가 있다는 오만, 내 일을 계획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무지까지 ‘교만의 3종 세트’가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나는 사업상 관례로 술 접대를 하고 다녔다. 매일 새벽이 돼서야 돌아오는 나를 아내는 뜬눈으로 기다렸다. 아내는 나를 앉히더니 간곡하게 사정했다.

“여보, 사업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서울에 온 목적을 생각해봐요. 주님의 일에 더 힘쓰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요? 우리 양구에서 살 때처럼 소박하게 살 수 없나요?”

하지만 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나로 인한 스트레스로 신경쇠약을 앓았고 저혈압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주님은 아내의 기도를 듣고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원하셨다. 폭주기관차처럼 멸망을 향해 달려가던 나를 가로막은 건 회사의 부도였다.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TV드라마에서나 보던 빨간 딱지가 집안 곳곳에 붙었다. 빚쟁이들은 어찌나 지독한지 아내가 시장이라도 갈라치면 몰래 따라붙어 행패를 부렸다.

“하나님, 지난 10년 동안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어째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어쩌면 그렇게도 무심하십니까.”

자격 없는 자의 투정이요, 공허한 외침이었다. 그때 난 공사를 따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관행을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부도를 당하기 직전에도 경고의 메시지를 주셨다. 하지만 베팅 한번으로 거부(巨富)가 되는 모습만 그렸던 나는 욕심을 멈추지 못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집 한 채뿐이었다. 아내는 신앙을 지켰으나 나에 대한 신뢰는 잃었다. 우리는 법적으로만 부부였지 한집에서 대화도 없이 남처럼 지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팔이 쑤셔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뇌경색 진단을 내렸다. 중풍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난 절망했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 직후라 사업 실패로 자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도 자살할 마음을 품고 동해로 차를 몰았다.

강원도의 한 산길도로에서 차를 세우고 낭떠러지 끝에 섰다. 구두를 벗고 한참동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아이들 생각이 났다. 어린시절 내가 꿈꾼 삶은 가난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없어진다면 내가 겪은 불행이 아이들에게 이어질 것 같았다.

결국 자살을 포기했다. 육신의 생명마저 내 멋대로 하려 했던 스스로가 미웠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생명의 말씀과 함께 새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8∼19)

아내와 딸들은 살던 집을 개조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어린이집’을 차렸다. 나도 운전으로 어린이집 일을 거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아내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고, 내 병도 차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의 어린이집 사업을 축복해주셨다. 가족 같은 분위기로 아이들을 돌본다는 소문이 퍼져 옆 동네 학부모들까지 찾아왔다. 예전처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경매로 처분될 뻔한 집을 지키고 빚을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었다.

“하나님, 저는 지금이 참 감사합니다. 이제 욕심 부리지 않고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신앙생활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리=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