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發 ‘낙하산’ 수두룩… 지난 4년간 고위 퇴직자 절반 피감기관행

입력 2012-10-07 21:58

통화 정책을 결정하고 금융회사를 관리하는 한국은행에서 ‘낙하산’ 재취업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년 동안 한은을 퇴직하고 재취업한 고위 임직원 중 절반이 감독대상 금융회사에 둥지를 틀었다. 절차상 문제는 없지만 감독기관에서 피감기관으로 일터를 옮기는 관행은 ‘금융권을 제대로 관리·감독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7일 한은이 민주통합당 정성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한은에서 퇴임 후 재취업한 2급 이상 임직원 14명 가운데 7명이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정한 ‘퇴직공직자 취업제한대상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이 옮긴 곳은 대부분 한은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금융회사다.

재취업자 중 취업제한대상 사기업이 아닌 곳으로 옮긴 7명 중 4명도 금융결제원, 한국투자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금융권이다. 단 3명만 국제기구와 국내 대학교에 재취업했다.

2009년 퇴직한 윤모 부총재보는 하나SK카드 감사로, 김모 부총재보는 서울외국환중개 사장으로 명함을 바꿨다. 남모 감사와 박모 금통위원은 각각 ㈜SK와 삼성생명 사외이사에 임명됐다. 안모 연구조정역은 BNP파리바 고문 자리에 앉았다.

한은 측은 이들이 재취업을 한 곳은 취업이 제한된 곳이지만, 모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승인을 받아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해명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퇴직 공직자는 퇴직일로부터 2년이 될 때까지 퇴직 전 5년 동안 맡은 업무와 밀접한 사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다만 사전에 심사·승인을 거치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하지만 피감기관으로의 이직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한은법이 개정돼 한은이 단순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금융권에 대한 조사와 감독권한을 지니고 있어서다. 이직한 임직원이 해당 금융회사의 요구에 따라 한은에 ‘로비스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통화정책과 금융기관 공동검사권을 수행하는 중앙은행 임직원이 퇴직하자마자 사기업이나 은행·금융공기업 등에 재취업한 것은 ‘전관예우’와 ‘낙하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