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피해 구미 봉산리 현장 르포] 유명무실 매뉴얼에 무능한 정부… 총체적 안전불감증

입력 2012-10-07 19:30


이번 불산 누출사고는 사고 발생 이전부터 지금까지 어느 것 하나 법과 매뉴얼대로 이뤄진 것을 찾기 어렵다. 총체적 안전 불감증을 드러낸 것이다.

우선 유해 화학물질은 사고 및 건강피해 예방을 위해 이를 사용하는 사업주가 유해물질 정보를 근로자에게 제공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즉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해당 물질에 작성·부착하게 돼 있고, 이를 근로자에게 교육해야 한다. 그러나 영세 업체인 ㈜휴브글로브는 불산을 다룰 때에는 방제복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5명의 근로자가 숨졌다. 소방관과 경찰관들도 불산의 위험성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방제복 등 안전장비 없이 구조 작업에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환경연구소 관계자는 7일 “현행 유해화학물관리법에 사고발생 시 응급조치 요령, 대피 요령 등을 알리도록 돼 있다”며 “주민들은 불산에 대한 기본적 정보조차 듣지 못한 상태에서 대피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 열린 환경부 국정감사에서는 정부의 허술한 대책이 도마에 올랐다. 민주통합당 김경협 의원은 “대피 시점은 너무 느렸고 (사고발생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뤄진) 주민복귀 시점은 너무 빨랐다”고 질타했다. 같은 당 홍영표 의원은 “매뉴얼에는 인명구조, 제독 작업, 잔류오염도 조사를 한 뒤 주민 복귀 결정을 하도록 돼 있는데 제독작업 종료 선언 5시간반 전에 주민을 복귀시켰다”고 지적했다. 본격적 잔류오염도 조사는 정부합동 조사단이 5일 현장에 파견되고 나서야 시작됐다. 무소속 심상정 의원은 “국립환경과학원의 오염도 측정과 제독작업이 끝나기도 전인 지난달 28일 오전 3시30분 환경부가 ‘심각단계’ 해제 공문을 발송했다”고 지적했다.

구미시는 환경부의 ‘심각단계’ 해제 판단과 국립환경과학원의 오염도 측정치를 주민복귀령의 근거로 제시했다. 환경과학원은 사고 다음날인 28일 오전 9시30분쯤 공장 주변을 조사한 뒤 사고 현장 반경 50m 안 대기 중 불산 오염도가 인체에 해로운 수준인 30ppm에 못 미치는 1ppm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불산의 작업장 기준치(8시간 노출)는 0.5ppm이다. 박정임 순천향대 교수(환경보건학)는 “노약자나 어린이 등이 24시간 거주하는 농촌마을의 피해는 심각할 수 있다”면서 “이들에게는 1ppm의 기준치가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과학원이 ‘인체에 해로운 수준’이라고 거론한 30ppm은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즉각 대피해야 한다’고 규정한 수치다.

구미=임항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