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2부) 학생 정신건강 현주소] (2) 위험수위 알코올 중독
입력 2012-10-07 19:27
‘술에 빠진 10대’… 중독자 5년 새 2배 가까이 증가
임모(17)군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소위 ‘노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부모의 이혼 후 할머니 집에 얹혀살면서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음주량은 급격히 늘어 거의 매일 소주 1병씩 마셨다.
술 마시고 길에서 자거나 ‘필름 끊김’도 자주 겪었다. 취중에 혼자 욕을 하거나 술 마신 후 학교 물건을 부수는 등 난동을 피운 적도 여러 번이다. 결국 학교를 자퇴한 임군은 지난해 11월 가족 손에 이끌려 간 병원에서 ‘알코올 의존증 초·중기’ 진단과 함께 입원치료를 받았다.
임군처럼 중·고교 때부터 ‘술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10대 알코올 중독 환자들이 늘고 있다. 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알코올 사용 장애 진료 현황’에 따르면 10대 환자 수는 2007년 637명에서 지난해 1076명으로 5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알코올 사용 장애는 알코올 남용과 알코올 의존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의학용어다.
10대의 고위험 음주율이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전국 800개교 중·고생 7만5643명을 조사한 결과 20.6%가 ‘지난 한 달간 술을 1잔 이상 마신 적 있다’고 답했다. 음주학생 중 1회 평균 음주량이 소주 5잔 이상인 남학생과 소주 3잔 이상인 여학생 등 ‘위험음주 학생’ 비율이 48.8%나 됐다. 위험 음주율은 2008년 44.6%, 2009년 47.4%, 2010년 47.2%에 비해 점점 느는 추세다. 또 교과부의 2010년 온라인 조사 결과 최초 음주 경험 연령은 12.8세였다.
하지만 10대 때 과·폭음은 특히 뇌 발달에 치명적이다. 뇌의 신경세포는 16세쯤 완성되는데 중·고교 때 음주를 하면 뇌세포가
손상되기 쉽다. 이로 인해 기억력과 사고능력이 떨어져 학습장애, 성장장애, 불안, 우울증 등의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15세 이전부터 음주를 하면 성인이 된 후 마신 사람에 비해 알코올 의존증이 될 가능성이 5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김석산 원장은 “성인 알코올 중독 환자의 대부분은 중·고생 시기에 음주를 시작했다. 10대 때부터 과·폭음을 반복하면 내성이 생겨 주량이 더욱 늘게 되고 결국 알코올 의존증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10대가 알코올 의존증을 진단받더라도 학업의 이유 또는 주변 시선 때문에 입원치료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지난 7월부터 알코올 의존증으로 입원치료 중인 김모(40)씨가 그런 경우다. 김씨는 고등학교 입학 전에 음주를 시작했다. 주 5일 이상 거의 매일 소주를 3병씩 마셨다. 술을 마시면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충동적으로 부모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고 파출소도 들락날락했다. 2년 전엔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나 퇴원 후 다시 술을 입에 댔고 폭력 행동을 반복했다. 김씨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이미 알코올 의존증 단계였지만 20여년간 정식 치료를 받지 못해 말기 증상으로 악화된 후에야 병원을 찾았다.
알코올 중독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황폐화시키는 것은 물론 가족이나 불특정 다수에게도 위험을 초래한다. 만취 상태에서 고성방가, 파출소 난동 같은 공공질서 문란 행위서부터 폭행·강도·강간·살인 등 강력 범죄까지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대검찰청이 2002∼2009년 주취 범죄율을 조사한 결과 평균 18.0%가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의대 이해국 교수팀이 지난해 8월 전국 교도소, 보호관찰소 등의 재소자 4419명을 조사한 결과, 766명(38.3%)이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였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알코올 관련 문제로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다. 특히 이들의 첫 음주 시작 연령을 조사해보니 보호관찰소 재소자의 55.1%가 20세 이전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신영철 이사장은 “어린 학생들에게 일찌감치 술의 폐해를 일깨워주고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며 “알코올 중독은 나이가 어릴수록 치료를 제때 받아야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