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곽한주]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했다

입력 2012-10-07 18:35


며칠 전 저녁 무렵 서울 지하철을 탔다가 깜짝 놀랐다. 10대, 20대는 물론 중년층까지 주위 사람 열이면 아홉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은 채 TV 프로를 보는 사람, 카카오톡을 하며 미소 짓는 사람, 분주히 손을 놀려 게임을 하는 사람, 묵묵히 인터넷 서핑을 하는 사람…. 그러나 이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고정된 채 주위를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탄생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스마트폰 이용자가 적잖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처럼 압도적 다수가 스마트폰을 지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순간적으로 “아!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모습이구나” 하는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각성은 신선하기보다는 착잡한 것이었다. 수많은 지하철 승객들이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왠지 좀비가 등장하는 SF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불길한 미래를 미리 훔쳐본 듯한 찝찝한 느낌. 그러면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2012년 대한민국의 우리들은 스마트폰 덕분에 행복해진 것일까.

스마트폰 가입자 3000만명, 하루 평균 이용시간 3시간. 국내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스마트폰은 이미 대한민국을 장악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업무시간이나 수업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이용한다고 한다. 스마트폰용 게임 애니팡 접속자가 하루 1000만명이고 평균 이용 시간이 54분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 이 정도면 스마트폰은 텔레비전을 제치고 우리의 여가시간을 지배하는 최고의 매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TV시대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이행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텔레비전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최고의 수단이었고 우리는 인생의 8분의 1을 TV에 바쳤었다. 이젠 TV 자리에 스마트폰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주도적 매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라이프스타일 말이다. 우리의 삶은 이제 TV시대와는 크게 달라지고 있고 앞으로 더욱 달라질 것이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더욱 개인화하고, 현실 세계로부터 떼어내 가상공간에 갇히게 할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이 기존 휴대전화와 인터넷, TV의 기능을 결합한 데다 휴대가 가능한 유비쿼터스 융합 매체로서, TV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매체이기 때문이다. TV가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는 가족적 매체인 데 반해, 스마트폰은 혼자서 접하는 개인 매체다. 더욱 중요한 차이는 TV가 때때로 제공하던 미디어세계를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제공한다는 점이다.

가상세계에서 방황하는 우리

게다가 스마트폰의 세계는 철저한 가상세계이다. 스마트폰은 게임이나 카톡, 영상, 웹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가상세계를 제공한다. 스마트폰에 몰두하며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지하철 승객에서 보듯이, 이용자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현실세계를 단숨에 벗어나 가상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사소한 편리함과 즐거움 때문에 그에 매달리고 있는 사이 스마트폰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꾸며 우리의 내면까지 변화시킨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미디어세계’에 열중하며 ‘현실세계’로부터는 멀찍이 떠나는 것이다. 현실과의 접촉을 스마트폰의 화면 터치로 대신하고, 현실로부터 눈을 돌려 가상세계에 몰입하는 삶이 우리가 원하는 삶일까.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접속이 오히려 우리를 더욱 외롭게 하고, 화려한 가상세계에서 방황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곽한주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