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만화 속 미래

입력 2012-10-07 18:35


후배 차를 얻어 탔다. 뒷좌석에 앉으니 차 안의 풍경이 생경했지만 내비게이션을 비롯해 운전석 주변 기기들은 어디선가 본 듯했다. 어릴 적 보던 만화 속 자동차 속 모습이다. 보통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얘기를 할 때 ‘만화 같다’고 한다. 그런데 둘러보면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은 옛날 만화 속 그 세상이다.

내비게이션은 어디로 가면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 길을 안내하고, 외국에 있는 친구와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컴퓨터를 다른 공간에 있는 전문가가 원격으로 고쳐준다. 말을 알아듣는 휴대전화도 있다. 증강현실도 등장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던 삶이 지금 우리의 일상이다. 앞으로 만화 속 어떤 황당한 것도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래의 물리학’의 저자 미치오 가쿠는 2100년의 인류는 컴퓨터 성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향상돼 생각만으로 기계를 제어할 수 있게 되고 수명은 150세까지 늘어나고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했다. 신(神)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단하다. ‘닥터 슬럼프’에서처럼 자동차를 접어 주머니에 넣어 다녀 주차 걱정도 없고, ‘독수리 오형제’에서처럼 순식간에 변신하는 것쯤은 10년 내에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기대해본다.

그런데 만화는 신나는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주 해적 코브라’라는 만화가 있었다. 생각으로 조절되는 사이코건을 한쪽 팔에 장착한 우주 해적의 모험담이다. 사람의 기억을 자유롭게 구성하고, 행성과 행성을 자유롭게 여행한다. 외계인이나 안드로이드, 그리고 유전적으로 변이된 생물도 그저 다른 인종, 다른 나라 사람처럼 대한다. 실험 중 실수로 파리와 유전적으로 합쳐져 괴물 취급을 받고 실험실에 갇힌 영화 ‘플라이’ 속의 과학자도 만약 이 만화 속으로 오면 그저 특이하게 생긴 사람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인류는 얼마나 많이 유전자 배합을 이리저리 해보고 시행착오와 아픔의 세월이 지나야 할 것인가.

머지않은 미래. 우리는 유전적 배합으로 부모의 훌륭한 점만 이을 수 있는 자식을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전자로 어느 정도까지 변화시킬 것인지, 만약 결과가 희망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화를 보면서 곧 현실이 될 신나는 세상을 미리 마음껏 누려보고, 그에 따른 윤리적인 부분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안주연 (웨스틴조선 호텔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