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2018 평창으로] 에이스가 돌아왔다… 한 경기 33골 기네스기록 보유 송동환 국내 복귀

입력 2012-10-07 18:22


1998년 3월 21일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아시아·오세아니아 아이스하키 주니어선수권대회 대한민국과 태국의 경기. 한국 감독은 경기 전 태국 감독을 찾아가 “미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정사정없이 몰아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전날까지 3승1무로 일본과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던 한국은 마지막 태국전에서 80골 차 이상으로 승리해야 골득실 차로 일본을 누르고 우승할 수 있었다. 한국은 태국전에서 91대 0이라는 말도 안 되는 스코어로 이겨 국제대회 첫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태국에게 아주 미안했죠.” 이 경기에서 무려 33골을 몰아넣은 ‘코리안 로켓’ 송동환(32·하이원)은 다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지만 한국 아이스하키를 우습게보던 일본을 꺾고 꼭 우승하고 싶었습니다.”

송동환이 터뜨린 태국전 33골은 아이스하키 국제경기 사상 한 경기 개인 최다 골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2003년 일본 리그 올스타전에 초청선수로 참가해 4골을 터뜨려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2005∼2006 아시아리그에선 한국인 최초로 쟁쟁한 외국인 선수들과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최다득점왕’에 올랐고, 그해 베스트 포워드 상도 차지했다.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리그 100포인트(2005년)와 200포인트(2010년)도 달성했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새로운 기록들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시즌 일본 닛코 아이스벅스에서 1라인 공격수로 활약했던 송동환은 지난 6월 2012∼2013 아시아리그를 앞두고 전력 보강에 나선 국내 실업팀 하이원(대표이사 최흥집)에 입단했다. 그는 하이원이 제시한 플레잉 코치직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아이스하키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인데, 마침 하이원에서 좋은 제안이 와서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일본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 선수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송동환의 이번 시즌 목표는 지난달 8일 개막한 아시아리그에서 팀을 정상에 올려놓는 것이다. 아시아리그에는 한국 팀인 하이원과 안양 한라를 비롯해 중국의 차이나 드래곤, 일본의 오지 이글스, 일본제지 크레인스, 닛코 아이스벅스, 토호구 프리블레이즈 등 7개 팀이 출전해 내년 3월 말까지 기량을 겨룬다. 지난달 9일 안양 한라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다리를 다친 송동환은 이르면 다음달 17일 고양링크에서 열리는 크레인스와의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송동환에게는 팀 우승보다 더 큰 목표가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6년 남았네요.”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한국 아이스하키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국내에서 비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는 동계올림픽에선 하이라이트 종목이다. 1998년 나가노대회부터 프로에 문호가 전면 개방되며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들이 총출동하자 인기가 치솟았다. 2006 토리노대회에서 아이스하키는 전체 입장권의 38.2%(32만여 장)를 점유해 스키(28.1%)를 제쳤다. 2010년 밴쿠버대회에서는 무려 46.8%(65만여 장)를 점유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개최국 자동 출전권은 토리노대회 이후 사라졌습니다. 올림픽에는 세계 랭킹 9위까지 자동 출전하고, 남은 3장의 티켓을 놓고 10∼30위가 다투죠. 우리가 지금부터 차근차근 실력을 기르지 않으면 평창올림픽 출전은 불투명합니다.”

아이스하키에서 개최국인 한국이 출전하지 못하면 올림픽 전체의 흥행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현재 세계 랭킹은 28위다. 한국은 지난 4월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 1 B그룹(3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내년 4월 헝가리 세계선수권엔 디비전 1 A그룹(2부) 대회에 출전한다. 톱 디비전에 16개 팀이 있고, 바로 밑에 디비전 1 A그룹에 6개 팀이 있다. 디비전 1 A그룹 6위인 한국의 실질적인 랭킹은 22위라고 할 수 있다.

송동환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이 때문에 평창올림픽 출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가가 불러 준다면 코치로 나설 순 있겠죠.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세계선수권에 출전해 한국이 디비전 1 A그룹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송동환은 정부와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하루빨리 손을 써야 한다고 했다. “아이스하키는 동계 최고 인기 종목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반이 너무 약합니다. 우선 실업팀이 더 늘어나야 해요. 그래야 선수층이 넓어집니다. 대학교 졸업하면 미래가 불투명한데 누가 아이스하키를 하려고 하겠어요?”

현재 한국에 아이스하키팀은 고등학교 8개 팀, 대학교 5개 팀에 불과하고 실업팀은 2개뿐이다. 등록선수는 170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것이다.

“경기장에 오면 금세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빠질 겁니다. 얼마나 박진감 넘치는데요. 아이스하키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무게 170g, 지름 7.62㎝의 퍽에 인생을 건 사나이의 당부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