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용현 (4) 예수님 이름으로 2억 외상 ‘섀시사업’ 승승장구
입력 2012-10-07 17:38
세례를 받은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제단을 쌓았고 수요예배와 금요 철야예배는 물론, 각종 기도회와 여름수련회 등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하루하루 신앙이 자라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무너진 사업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성실함을 알아주는 고객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매출이 점점 늘었다. 평생 봐야 할 것만 같았던 빚쟁이들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오토바이센터가 번창하면서 농기구대리점을 개업했고 양구에서 가장 큰 군납공장을 사들이기도 했다.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방식이 오묘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하나님은 물질을 부어주실 때 결코 인색하지 않으셨다. 입을 벌리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다윗의 말처럼, 나는 축복의 늦은 비를 맞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그사이 자식을 넷째까지 낳았다. 하루는 넷째가 갑자기 아파 병원에 데려갔더니 급성 모세기관지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합병증으로 폐렴을 동반할 수 있는 위중한 상태여서 며칠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격을 받은 나는 아내와 교대로 병실을 지키면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 지난 죄가 너무나도 큽니다. 평생 달게 받을 테니 딸에게 그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기도를 계속한 지 열흘째 되던 날 꿈에서 주님을 봤다. 주님은 품에 안겨 있던 아이를 아내에게 되돌려주셨다. 눈을 뜨자 어두컴컴한 기도실에 나 혼자 남겨져 있었다. 그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아이가 열이 내리고 기침이 잦아들었다는 소식이었다. 신기하게도 아내 역시 아이 옆에서 잠들었다가 나와 비슷한 꿈을 꿨다고 했다.
다음날 의사는 이틀 후면 퇴원해도 된다고 말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나님에게는 병의 권세를 제어하는 능력이 있다. 질병의 고난 속에서 주님이 내게 기대하시는 것은 오로지 주님을 붙들고 의지하는 믿음이란 걸 그때 난 배웠다.
신앙의 성장과 함께 사업도 나날이 번창해 내 나이 30대 후반일 때 양구에서 손꼽히는 부자 대열에 낄 수 있었다. 주님은 나를 크게 쓰임 받는 종으로 쓰시기 위해 더 큰 물가로 인도하셨다. 양구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1983년 서울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당시는 집집마다 알루미늄 창틀(섀시)을 설치하는 게 유행하던 시기여서 섀시 대리점을 열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대표적인 섀시 브랜드 본사를 찾아가 특판점 담당자를 만났다.
“신설동에 특판점을 차리고 싶습니다. 물건 값으로 1억5000만원을 내고 보증금은 차후에 드리면 안 될까요?”
보증금 2억원을 면제해달라는 황당한 요구였다. 담당 상무는 “그럼 무엇으로 보증하겠냐”고 물었다.
“난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세상 만물을 지으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분명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상무는 큰소리로 웃으면서 “사장님과 의논해보겠다”고 했다. 며칠 뒤 놀랍게도 특판점을 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무와 사장 모두 크리스천이었다. 무모해보였지만 나의 태도와 신앙에 대한 확신을 믿고 허락해준 것이다.
섀시 특판점을 하면서 건설업 열풍을 타고 많은 돈을 벌게 됐다. 몇몇 천주교 성당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교회 창호공사에도 손을 댔다. 당시 아는 집사님을 통해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을 소개받았다.
“명성교회처럼 유명한 교회의 공사를 저 같은 개인사업자가 맡을 수 있을까요”라고 조심스레 묻자 목사님은 “집사님이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라고 들어서 믿고 맡기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거룩한 주의 전을 담당했던 레위인들과 같은 심정으로 보통 때보다 두세 배 신중을 기해 공사에 임했다.
정리=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