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벼룩시장 나들이] 푼돈으로도 추억이 한아름… 情 흐르는 ‘시간여행’
입력 2012-10-05 18:22
화려한 조명 대신 햇볕이 내리쬐는 곳. 벼룩시장에는 훈훈함이 담긴 중고물품이 넘쳐난다. 물건을 팔면 일정액을 기부하는 그곳에선 문화와 정이 느껴진다. 매주 토요일이면 만날 수 있는 벼룩시장은 경기가 좋든 나쁘든 항상 사람들로 북적댄다. 내가 입었던 셔츠는 이웃집 아저씨가 다시 입고 이웃집 딸이 보던 동화책은 내 아들 손에 쥐어진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팔지만 사실은 거저다. 서로의 정성이 담긴 물건만 교환될 뿐이다. 벼룩시장은 그래서 시장이 아니다. 만남의 광장이다. 추석을 1주일 앞둔 지난달 22일 서울시내 벼룩시장 3곳을 돌아봤다.
친환경 시민생활운동, 뚝섬아름다운장터
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청담대교 북단에 자리 잡은 뚝섬아름다운장터(뚝섬장터)에는 가로세로 2m가 채 안 되는 돗자리 하나에 옷과 생활용품, 잡화 등을 펼쳐놓은 판매자와 이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물품별로 아기자기한 메모지에 ‘500원’ ‘1000원’ 등 ‘착한’ 가격표를 써 붙인 곳도 보였다. 장터에는 어른부터 아이까지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물품 가운데는 골동품급도 제법 보였다. 어댑터만 파는 50대 아저씨, 워크맨과 카세트플레이어를 갖고 나온 60대 노인도 있었다. 성수동에서 왔다는 김원기(53)씨가 워크맨을 가리키며 “작동이 잘 되느냐”고 묻자 판매자 박인규(64)씨는 “안 되면 왜 나왔겠어?” 하며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박씨 바로 옆자리에서는 컴퓨터용 모니터가 5000원에 팔렸다.
뚝섬장터는 매년 3∼10월 열린다. 올해는 방문객이 벌써 26만6000명을 넘었고, 8700여 팀이 판매자로 참여했다. 판매액의 10%를 자율기부한다. 9월까지 3270여만원이 모금됐다. 뚝섬장터는 친환경 시민생활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매회 어린이들로 100팀씩 꾸려 페이스 페인팅이나 폐지를 활용한 노트 만들기 등 이벤트를 열고 있다.
청소년 기부문화 교육장 활용, 서초토요문화 벼룩시장
서초구의 서초토요문화 벼룩시장은 지하철 2·4호선 사당역 1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만날 수 있다. 복개도로 840m 위에 펼쳐진 시장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방배동에 사는 정재욱(37)씨는 아내와 함께 5∼6세 아이 옷과 장난감을 들고 나왔다. 정씨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이 쓰던 물건인데, 벼룩시장 인기 물품은 아이 옷과 남자 점퍼”라고 귀띔했다.
옆에선 20대 초반 여성이 ‘이효리 만화집’을 1만원에, 밥공기를 1000원, 미국산 코튼 세트를 3만원에 팔고 있었다. 벼룩시장 물품의 70%가 의류여서 금방 눈길을 끌었다. 우면동에서 왔다는 김금옥(56·여)씨는 의류와 함께 ‘한글개역판’ 성경책도 권당 2000원씩에 내놓았다.
벼룩시장에도 나름 규칙이 있다. 판매자들이 신상품이나 재고품을 판매하다 적발되거나 음주행위, 고객과의 마찰로 물의를 빚는 경우 한 달간 참가신청이 제한된다.
서초벼룩시장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매회 판매자로 신청받아 판매금액의 50%를 기부토록 하고 있다. 이는 교육 차원이다. 이곳엔 기부왕도 있다. 30년간 동대문에서 원단 소매업을 했다는 전봉순(81) 할머니는 15년간 매회 5만1000원씩 기부해 왔다.
예술가와 관객의 만남, 홍대 예술시장 프리마켓
홍대 예술시장 프리마켓(홍대프리마켓)은 중고물품을 파는 벼룩시장이 아니다. 이곳은 작가와 시민들이 만나는 ‘예술시장’을 표방한다. 판매물품은 모두 창작 신상품이다. 주최 측의 자격요건을 얻은 작가만 판매자로 참여한다.
홍대 앞 놀이터 내부에서 진행되는 홍대 프리마켓은 매주 1만여명이 방문한다. 최근엔 중국, 일본 등 관광객도 급증하며 외국인 여행가이드북에도 수록됐다.
이곳에선 매주 8팀에 한해 음악과 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 공연이 선보인다. 이날 프리마켓에는 100여명의 작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선보였다.
작가들은 각종 공예품, 가죽제품, 귀고리, 도자기, 도장, 병뚜껑 공예, 그림 등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호주 관광객 대니얼 호튼(33)씨는 1000원짜리 그림엽서를 5장 구입했다. 그는 ‘4×6’판 크기의 엽서를 흔들어 보이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내겠다고 말했다. 정선영(32) 작가는 “이곳은 일종의 오픈 갤러리로 다양한 사람과 만나는 자리이며 교감의 장소”라고 소개했다.
글·사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