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뜬히 즐길 수 있었던 운동이 갑자기 힘들어져 할 수 없을 때, 존경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자녀들이 자신을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때, 희끗희끗해지는 머리카락과 굵어지는 허리가 걱정돼 자꾸 거울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무심한 세월의 흔적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마치 ‘늙음’이란 ‘젊음’이 끝난 후 별개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여기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별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노전(老前)생활’이란 말이 없는 것처럼 ‘노후(老後)생활’이란 말도 틀린 말이다. 우린 그저 계속 늙어가고 있을 뿐이며 산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것이다.
젊은 날에 비해 노동력과 경제력이 떨어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정신적·영적인 의미로 채울 수 있어야 한다. 이 시기에 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 가치나 의미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는 ‘실존적 공간’을 갖고 있다.
이를 채우기 위해 영혼에 자양분을 제공해 줄 놀이와 여가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묵상과 성경읽기, 기도 등으로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나의 영혼의 지문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며 영혼의 나이테를 만드는 방법이다. 즉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나이테를 늘려가는 것이다.
반면 노년기는 육체적인 쇠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창조적인 생활과 영적생활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은혜의 시기이다. 75세까지 작곡을 하며 명곡을 남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82세끼지 저술활동을 했고 70세가 넘어서 ‘부활’을 탈고한 톨스토이, 76세의 고령으로 ‘파우스트’를 쓰기 시작해 80세가 넘어서 완성한 괴테 등을 보면 노년기는 인생의 하향기가 아니라 인격의 통합을 이루는 절정기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육체적 주름을 세지 말고 영혼의 나이테를 세어보자. 연륜 있는 나무가 수십 겹의 나이테를 소유하듯 정신적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강화될수록 우리 영혼의 나이테가 한 겹 한 겹 늘어갈 것이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힐링노트-이지현] ‘영혼의 나이테’ 만들기
입력 2012-10-05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