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배의 말씀으로 푸는 건강] 아! 스티브 잡스
입력 2012-10-05 17:54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실존주의 철학자들이나 할 법한 내용의 이 연설은 스티브 잡스가 암 수술을 받고난 2005년 스탠퍼드 졸업식에서 한 것입니다.
癌 조기 발견하고도 기존의 치유법 거부
정기 신장 검사 중에 우연히 췌장의 암을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우리 중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충격과 약간의 혼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5년 생존율이 5%에 미치지 못하고 진단 1년 후 생존율조차 45%에 불과한 치명적인 질병이니 누군들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그나마 그의 췌장암은 진행 속도가 느려 완치율이 높은 희귀성 종양, 즉 췌장 도세포 종양(췌장 신경 내분비 종양)으로 조기에 발견된 만큼 전이되기 전에 수술로 말끔히 제거하는 것이 가능한 종류였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창조 신화의 주인공이며 영원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그는 웬일인지 유일하고 무이한 치료법인 수술을 거부하고 여타의 다른 방법을 찾아 헤맸습니다. 발견하고 9개월이나 지난 후 수술을 받긴 했으나 결국엔 간으로 전이되어 회복 가능한 시기를 놓쳐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췌장암에선 복통과 체중 감소의 증상이 있고 암의 위치에 따라 황달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지방의 불완전한 소화로 기름진 변 또는 회색변의 양상을 보일 수 있으며 없던 당뇨병이 생기거나 기존의 당뇨병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초기엔 증상이 거의 없고 또 복부 깊숙이 다른 장기에 둘러싸여 있어 진단도 용이하지 않습니다. 흡연자에서 발생할 확률이 비흡연자에 비해 2∼5배 가량 높습니다. 오래된 당뇨병이나 지방이 많은 음식 섭취와도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용매제, 휘발유, 살충제나 벤지딘 등의 화학물질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도 주의를 요합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에서 기술과 예술을 통합하고 완벽과 열정에 맹렬했던 스티브가 초기의 췌장암을 마주 대해 취할 수 있던 단 하나의 진리를 외면하고 선택했던 여타의 방식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그는 주로 신선한 당근과 과일 주스로 구성된 엄격한 채식 위주의 식단을 고수했다. 여기에 침술과 다양한 약초 요법을 병행했고 가끔 인터넷이나 전국 각지 사람들과의 상담을 통해 알아낸 민간요법을 몇 가지 사용하기도 했다. 심령술도 거기에 속했다. 한동안은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자연치료 클리닉을 운영하며 유기농 약초 복용과 주스 단식요법, 빈번한 장세척, 물요법, 모든 부정적인 감정 표출 등을 강조하는 의사에게 치료를 맡기기도 했다.’
뒤늦게 수술했지만 늦어… 구원도 마찬가지
구원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진리에 이르는 많은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관대한 입장은 귀에 솔깃합니다. 스티브가 ‘다른 치료법은 없는가?’ 찾는 것이 이해가 가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다른 이름은 없는가?’ 묻는 것도 수긍은 갑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갈망하는 ‘우리의 가치관’이 암을 퇴치할 수 없는 것처럼 ‘정말 그래야 하는 사실’인 것에 관한 믿음에 헌신되지 않고선 생명에 다가서긴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구원에 이를진 모르지만 그리스도를 놓친다면 그건 또 무슨 비극일까요.
<대구 동아신경외과원장· 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