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교육센터 건립 제2·제3의 강영우 만들겠다”… 2012년 2월 소천 故 강영우 박사 부인 석은옥 여사

입력 2012-10-05 17:27


시각장애 청년 강영우를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다른 이를 도우면서 살아가리라’고 생각한 여인은 그와 결혼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인물이 되겠다는 청년의 꿈을 믿었기 때문이다. 정성스레 남편을 내조했다. 그리고 신앙이 돈독한 그를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사람으로 세우겠다고 결심했다.

남편은 한국계 시각장애인으로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위원(차관보급)까지 올랐다. 마침내 세계적인 지도자가 된 것이다. 전 세계의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과정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어려움도 많이 밀려왔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믿은 신앙으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 꿈을 견고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지난 2월 소천한 고(故) 강영우(1944∼2012) 박사의 부인 석은옥(70) 여사가 지난 4일 서울 신교동 서울맹학교를 방문,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강연했다. 석 여사는 먼저 강 박사와의 사랑과 신앙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서울맹학교는 강 박사의 모교다.

“51년을 알고 지냈고 그 중 40년을 부부로 함께 한 남편과는 대학교 때 만났어요. 걸스카우트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당시 서울맹학교 중등부에 입학한 강영우 학생이 방황하지 않도록 돌봐 주었지요. 그의 첫인상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밝고 건강했기에 겉모습만 보면 전혀 시각장애인 같지 않았답니다”

맞선을 보러 다니던 1968년, 석 여사는 그의 예고 없는 사랑고백에 적지 않게 놀랐다고 털어놨다. 그의 청혼을 받자 ‘무남독녀로 금이야 옥이야 사랑받으며 자란 내가 시각장애인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놀랄텐테….’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1972년,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와의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제 마음에는 이미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와 닿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행복에 가득찬 제 모습을 본 가족과 하객들은 진심으로 축복해 주셨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의 변화도 없었고 후회한 적 또한 없었습니다.”

석 여사는 이날 오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2, 제3의 강영우 박사가 나올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석 여사는 지난 2월 남편이 떠난 뒤 ‘강영우 장학재단’을 5월에 설립, 시각장애인에게 유학의 기회를 주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간 받은 축복과 은혜를 베풀며 살고 싶은 까닭이다. 남편이 어려운 가운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독지가들의 장학금 덕분이고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고인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재단이 설립된 뒤 각지에서 성금을 쾌척하는 분들이 줄을 잇고 있어요. 강 박사의 삶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었던 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6000만원 정도 모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아픔을 생각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잇따르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런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도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영우 장학재단은 이미 1호 장학생으로 시각장애인인 광주 세광학교 교사를 선발해 놓았다. 내년 9월부터 1년간 미국에서 장애인을 위한 전문직 교육시스템을 배우도록 할 계획이다.

석 여사는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의 90% 정도는 안마사나 침술사가 된다”며 “재단이 활성화되면 시각장애인이 IT 업종 등 전문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교육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 중앙장로교회에 출석하는 그는 요즘 두 아들을 장가보내고 2006년 결성한 한인여성들의 모임인 ‘아름다운여인들의 모임’의 회장을 맡아 매달 양로원과 고아원 등을 방문하고 장애인과 워킹맘 등 소외계층 지원에 열심이다. 100여명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신학서적을 녹음하는데 참여율이 무척 높다. 모임 덕에 몸찬양과 크로마하프도 익혔다는 석 여사는 “봉사활동을 다니고 찬양을 부르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석 여사는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세계 한인의 날을 맞아 정부가 강 박사에게 추서하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시각장애인 장학기금 마련을 위해 6일 오후5시 서울 상도1동 상도교회에서 ‘강영우 박사 추모 음악회’를 연다. 강영우 박사 1주기 추모예배는 내년 2월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에서 드릴 예정이다.

남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남편은 나보고 1년을 기다리고 칠순잔치를 같이 하자더니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어요. 아직도 남편과의 알콩달콩 지낸 결혼 생활이 문득문득 떠오른답니다. 저는 남편을 통해 꿈을 이루었습니다.”

석 여사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밝았다. 가을 소풍을 앞둔 소녀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