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⑭ 확신] 불운까지도 사랑하라

입력 2012-10-05 18:06


명량대첩제가 시작되었다. 420여년 전, 이순신이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일본 전선을 대파한 명량해전을 기념한 축제이다. 명량대첩의 승리 원인을 전문가들은 지형과 조류 활용, 포격전술 등으로 꼽는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이순신의 리더십이다.

그는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대패해 13척을 제외하고 전멸당한 상태에서도 “아직도 13척이 있고”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굴의 신념이 있었다.

그런 확신과 평상시 현장에서의 동고동락이 있었기에 최근 발굴된 오익창의 ‘사호집’ 기록처럼 절대 열세인 상황에도 백성들이 이순신과 함께 목숨을 건 것이다.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도 자신의 대장선이 엄청난 수의 적선에 에워싸인 상태에서도 한 움큼의 두려움 없이 가장 앞서 전투를 지휘하며 군사들의 용기를 이끌어 냈다.

그가 선택한 전투 장소인 명량해협도 이순신의 평상시의 치열한 고뇌, 관찰력과 학습의 산물이었다. 이순신은 승리를 위해, 백성과 군사들을 위해 언제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리며 온갖 근심(1595년 10월 20일)”에 쌓여 살았다.

조총을 만들 때도 대장인 자신이 “항상 눈앞에 두고 그 묘리를 실험”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생각해 내어(百爾思得, 백이사득)” 조총을 만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전투를 하기 전에는 언제나 부하들과 함께 “온갖 방책을 의논(百爾籌策, 백이주책)했다. 나폴레옹처럼 불가능은 없다는 자세로 해답을 찾았던 것이다.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지혜를 숙성시키고,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가 거북선 창제였고, 한산대첩의 학익진이었다.

백척간두에 선 조선 수군을 다시 일으킬 곳, 소수의 전선과 군사로 적의 대군을 맞아 승리할 기적의 승부처로 명량해협을 찾아냈다. 이순신은 전투 전날 ‘오자병법’을 창의적으로 인용해 말했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1000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1597년 9월 15일).” 그 길목을 죽을 각오로 지켜 승리했다. 그리고는 “하늘이 도왔다”며 하늘에 감사함을 표했다.

명량해전은 그 어떤 위기도 평상시 준비한 사람, 사랑을 베푼 사람, 절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대표적인 증거다. 행운도 불운도 모두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순신처럼 불운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인생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박종평(역사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