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한국영화의 힘
입력 2012-10-05 17:04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낯설겠지만 얼마 전까지 ‘방화(邦畵)’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사전적 의미는 ‘자기 나라 영화’다. 그러니까 한국영화나 국산영화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를 일본식 용어인 방화라고 한 것은 일본어의 잔재가 남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 배경에는 경멸, 또는 폄하의 뉘앙스가 깔려 있다.
그만큼 한국영화에 대한 평가와 대접은 신통치 않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생을 포함해 지식인입네 하는 층이라면 한국영화를 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실제로 당시 한국영화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려대는 최루영화투성이였고, 주 관객은 교육 수준이 낮은 부녀층, 이른바 ‘고무신부대’였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적은 제작비와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의 표현 자유 제약 탓이 컸다. 이는 그 후 사회적 변화와 함께 영화의 제재 및 주제에서 표현 자유가 최대한 신장되고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결과 오늘날 한국영화가 ‘방화’ 시절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발전한데서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 한국영화의 힘은 매우 세다. 세계 영화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할리우드 영화도 국내에서는 기를 못 편다. 이를테면 개봉 70일 만에 한국영화 중 6번째로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한국영화사상 최고 흥행작이 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의 경우. 지난 2일 현재 누적관객 수는 1302만393명이었다.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가 2009년에 세운 국내 최고 기록 1362만4328명을 능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말이 1000만명이지 대한민국 인구를 5000만명으로 잡는다면 5명 중 1명이 영화를 봤다는 얘기이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뿐인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작품상을 거머쥐었다. 흥행과 작품성 모두에서 한국영화가 기염을 토하고 있는 것.
앞으로도 한국영화가 더욱 힘차게 뻗어나가기를 고대하지만 힘이 세진 만큼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지나친 욕설 남발이 대표적이다. 어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스런 욕설이 끊이지 않거니와 어떤 영화는 너무 지독한 비속어를 사용하는 바람에 객석을 박차고 나가고 싶을 정도다. 영화는 현실의 반영일 뿐이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영화가 현실을 이끄는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