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경제협력 기조마저 무너뜨릴 셈인가
입력 2012-10-04 18:46
통화스와프 확대조치는 상호이익 위한 것
최근 일본 정·관계에서 터져 나오는 한·일 통화스와프 확대조치 중단 관련 발언은 매우 유감스럽다. 독도,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벌어지는 가운데 현안과 직접 관계없는 경제 이슈를 들먹이며 압박을 가하려는 형국이다. 다툼이 설혹 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며 교류해온 이웃나라로서는 속 좁은 치태(恥態)가 아닐 수 없다.
통화스와프란 외환유동성과 관련해 마이너스통장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규모를 확대하면 그만큼 한국이 외환유동성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한·일 통화스와프협정은 한국만 혜택을 보는 게 아니다. 통화스와프협정에 규정된 원·엔 환율에 따라 엔화는 절상 압력을 피할 수 있어 일본의 수출기업에 유리할 뿐 아니라 일본이 그간 추진해온 엔의 국제화에도 기여하는 바 크다.
그 결과 양국간 통화스와프 규모는 꾸준히 커졌다. 특히 지난해 양국은 글로벌 금융·재정위기 속의 변동성 확대를 우려해 130억 달러의 스와프규모를 700억 달러(약 78조원)로 확대했다. 이는 양국의 상호 이익, 즉 한국의 유동성 대응과 일본의 엔화 절상 압력 최소화라는 목적에 상응한 합의였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를 두고 마치 한국에 대해서만 시혜적인 확대조치였던 것처럼 강변하고 있다.
독도 문제가 한창 부상하던 올 8월 아즈미 준(安住純) 당시 일본 재무상은 통화스와프협정 확대조치 중단을 처음 거론했고, 이어 지난 2일 신임 조지마 고리키(城島光力) 재무상은 기자회견에서 한·일 통화스와프협정에 대해 “시한 연장 여부를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3일 NHK의 보도에 따르면 재무성 담당과장은 이달 말로 기한이 만료되는 통화스와프 확대조치 연장과 관련해 “아직까지 한국으로부터 타진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이 확대조치 연장을 원한다면 일본에 공식 요청해야 한다는 의미, 뒤집어 말하자면 만에 하나 있을 한국의 유동성 위기를 담보로 잡고 한국을 윽박지르겠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 일각에서는 일본 정·관계의 압력을 차라리 무시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3000억 달러 이상이고 한·중 통화스와프 규모가 3600억 위안(약 64조원)이라는 점을 든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재정위기가 여전하고 아직까지 외부 변동성에 취약한 우리 경제를 감안하면 감정적인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한·일 간의 통화스와프협정 파기는 양국간 기왕의 경제협력구도가 흔들리고 있음을 내외에 드러낼 뿐이다. 이는 결국 공동의 손실을 자초하는 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양국의 통화스와프 유지 필요성을 역내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강조함으로써 협력관계의 틀을 훼손하려는 일본의 비이성적인 행태를 문제 삼아야 한다. 한·일 경제협력구도는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위한 토대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뒤흔들려는 일본의 일부 정·관계 인사들의 몰지각을 탓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