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 덜미잡힌 ‘파렴치 부자들’… 세금체납, 고가 미술품·악기 사들여

입력 2012-10-04 18:47


종합소득세 5000만원을 체납 중인 소아과의사 A씨는 신출귀몰했다. 국세청에서 샅샅이 조사했지만 장부상 그의 재산은 단 한 푼도 없었다. 미술품 애호가로 알려진 그가 거액의 미술품 등을 은닉하고 있을 가능성은 많았지만 소득이 드러나지 않아 국세청은 세금을 한 푼도 추징하지 못했다. 그러나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오면서 남긴 통관기록 때문에 국세청에 꼬리가 잡혔다.

국세청은 A씨의 부인이 이조백자 등 7억원 상당의 골동품과 미술품을 수입한 사실을 파악하고 집을 덮쳤다. 조선말기 천재화가인 오원 장승업의 영모도(7000만원 상당)를 비롯한 다수의 미술품이 발견됐다. 국세청은 체납금액 상당의 미술품을 압류 조치했다.

거액의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고가 미술품이나 악기 등을 사들여 은닉한 파렴치한 부자들이 대거 국세청에 적발됐다. 지난 2월 발족한 국세청 ‘숨긴재산 무한추적팀’은 지난달에 50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 30명의 집·사무실 등을 뒤져 10여명에게서 고가미술품 23점을 압류했다고 4일 밝혔다. 이들은 숨겨둔 현금으로 국내 유명 미술품 경매회사와 갤러리 등에서 미술품을 구입하거나, 크리스티 등 외국의 유명 경매회사와 갤러리에서 수억원대의 미술품과 악기 등을 수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적발된 은닉 물품의 면면은 화려하다. 세계적인 조각가 겸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Fallen Flower’(1억2000만원), 장 밥티스트 뷔욤의 첼로(1억2000만원), 국내 경매 낙찰총액 1위 작가인 이우환의 ‘조응’ 시리즈(1억원), 세계적인 한지 작가 전광영의 ‘집합’(9000만원) 등이 고액체납자 집과 사무실에서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1억5000만원이나 세금을 체납했던 한 인터넷 교육업체는 국세청이 이우환의 ‘조응’에 대한 압류절차에 들어가자 뒤늦게 체납액 전체를 일시에 납입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압류 미술품 소유자들에게 한 달가량의 시한을 주고 밀린 세금을 내라고 통지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