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1조원대 위장거래 의혹 무역업체 대표, 거래 회사와 이름 같은 페이퍼컴퍼니 3곳 설립

입력 2012-10-04 18:42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CIB) 계좌를 통해 1조원대 돈을 위장거래했다는 의혹이 있는 A무역업체 대표가 지난해 해외로 거액을 송금할 무렵 미국에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되는 회사 3곳을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들은 A사가 중개무역을 했다는 업체와 회사 이름이 동일해 위장거래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4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A사 대표 정모(73·재미교포)씨는 지난해 4월 11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 M무역업체를 설립했다. 법인 대표에는 정씨 자신과 가족 2명의 이름이 올랐다. 정씨는 같은 해 5월 18일과 7월 5일에도 같은 이름의 회사를 2개 더 설립했다. 모두 가족이 대표로 돼 있는 1인 기업이다. 회사 주소를 확인한 결과 모두 알래스카주의 주거지역에 있는 2층짜리 가정집이었다.

의혹의 핵심은 이 업체들의 회사명과 설립 시기다. M사는 정씨가 이란 기업과 대리석 중개무역을 하기 위해 수입 계약을 맺었다는 회사(M사)와 사명이 같다. 정씨는 지난달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에 있는 A사를 통해 두바이에 있는 이탈리아산 대리석 수출 업체 M사와 수입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그는 이란에 있는 T사에 같은 양의 대리석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중개무역을 했다고 설명했다. 대리석을 받은 T사가 CIB에 돈을 결제했고, CIB가 기업은행에 지급확인서를 보내 돈을 인출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이 돈에서 중개수수료를 제하고 나머지를 모두 M사에 수입대금으로 송금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지난해 2∼7월 50여 차례에 걸쳐 기업은행에서 수출대금을 인출한 뒤 5∼6개국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는 정씨가 페이퍼컴퍼니로 보이는 회사를 세운 시기(지난해 4∼7월)와도 겹친다. 정씨가 대리석을 거래했다고 주장하는 업체와 같은 이름의 회사를 해외송금 무렵 설립한 것이다. 정씨가 ‘3자 무역’ 방식으로 자금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정씨는 최근 통화에서 “중개무역을 위해 계약한 업체는 두바이에 지사가 있는 뉴질랜드 법인”이라며 “미국에 같은 이름의 회사를 설립한 건 맞지만 전혀 다른 회사”라고 해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정씨가 세운 회사 가운데 의심스러운 곳은 모두 스크린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이성희)는 지난달 서울 잠실동 A사 사무실과 정씨 자택을 압수수색했고 조만간 정씨를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