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도심에 ‘시한폭탄’이 달리고 있었다?…탱크로리 위험물 표시 없이 질주, 이동 경로도 파악 안돼

입력 2012-10-04 21:40


유독물이나 독성가스를 운반하는 탱크로리가 주택가나 도심 등에서 무차별 운행하고 있어 대형 사고 우려가 크다. 독성물질 운반 차량은 위험물 표시조차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데다 이동경로 파악 등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경북 구미 화학공장 가스 누출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국내 탱크로리 차량(5∼25t급)은 8월 말 현재 총 2만4794대가 등록돼 있다. 그 가운데 LP가스나 유조차량이 1만5617대, 고압가스 204대, 화공약품(화학물질 포함) 114대, 음료 116대, 기타 8743대로 분류된다. 그러나 유독물이나 독성가스 운반 차량의 경우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탱크로리 형태가 아닌 용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실태 파악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4일 경기도 시흥 시화공단 주변을 둘러보니 각종 유독물질을 실은 차량이 공단 주변 시내를 아무 제지 없이 통과하고, 고속도로에 진입해도 규제를 받지 않고 있었다. 상당수 차량은 위험물 표시조차 없었고, 유독물질이 용기에 실려 있어 사고가 나면 그대로 쏟아질 것 같은 트럭도 적지 않았다. 같은 날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도 위험물을 실은 트럭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유독물 용기를 한꺼번에 싣고 달리는 2.5t 트럭에는 위험물 표시조차 없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4만여종으로 그중 유독물은 1500∼1600종에 달한다. 이들은 모두 생산·수입 업체를 통해 공장 등으로 공급된다. 그러나 어떤 경로와 운송수단으로 옮겨지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탱크로리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2일 경북 경주에선 20t급 LP가스 탱크로리 차량이 전복돼 가스가 누출됐고, 지난 3월 전북 완주에서는 20t급 LP가스 탱크로리 차량이 국도를 달리다 15m 아래 철길로 굴러떨어졌다. 만약 독성가스 운반 차량이었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2010년 12월에는 서울 외곽순환도로 부천나들목 구간 공터에 주차돼 있던 25t 탱크로리 유조차에서 불이나 주변 차량 39대가 불에 타고 도로 일부가 녹아내렸다. 운전자가 기름저장용 컨테이너에서 경유를 차량 연료통에 넣던 중 스파크가 일어 불이 나면서 유조차로 옮겨 붙였다. 사소한 실수가 대형 사고를 부른 셈이다.

그러나 유독물이나 독성가스 운반 차량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고압가스 운반 탱크로리의 경우 도로교통법(제6조)에 따라 지자체별로 24시간 운행 제한이 가능하지만 유독물 운반 차량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유독물이나 독성가스 운반 차량은 대부분 운반 경로나 인구 밀집지역 주차 여부, 교통사고 발생 등을 실시간 확인하기 어렵다”며 “독성가스 용기도 제각각이고 외관상 파악도 어려워 사고 시 대응이 힘들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운송관리국(DOT)에서 유독물이나 독성가스 운반 차량 전체에 대해 실시간 감시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또 독성가스의 생산과 유통, 폐기 경로까지 일괄 관리하고, 일부 주에선 고속도로 운행도 제한하고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