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구걸행위 단속법

입력 2012-10-04 18:38

돈이나 음식 등을 구걸하는 거지는 가난의 역사가 긴 우리 국민들에겐 매몰차게 내칠 수 없는 존재였다. 나뭇껍질을 벗겨먹고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보릿고개를 넘었던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내 집을 찾아온 거지나 시주승을 박대하지 않고 쌀 한줌 쥐어 보내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각설이 타령’이 연극 ‘품바’로 각색돼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것도 과거에 대한 아련한 추억 때문이리라. 최근엔 TV 개그 프로그램에 ‘품격 있는 꽃거지’가 등장해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달라면서 깨알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심했던 중세 유럽 거리에는 거지들이 넘쳐났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잭슨 스필보겔 교수는 저서 ‘서구문명’에서 “18세기에도 도시든 시골이든 가난은 심각한 문제였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선 전 인구의 25%가량이 거지였고, 독일 마인츠에선 30%가 거지나 매춘부였다”고 적고 있다.

거지가 크게 늘어나자 15세기 이후 독일 몇몇 시 당국은 거지들에게 메달로 된 ‘거지증서’를 발행해 제한된 지역 안에서 구걸하도록 했다. 1550년 독일 뮌스터에서는 거지들의 구걸 시간을 법으로 정해 오전에만 구걸하도록 하고 오후에는 금지했다. 영국왕 헨리 8세는 1536년 ‘구빈법’을 만들어 부랑인들의 구걸을 처벌하고 반복적으로 위반할 때는 사형까지 시켰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도 1601년 구걸과 개인적 자선행위를 금지하고, 노동기피자와 부랑인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는 ‘구빈법’을 만들었다.

최근 미국 남부 최대 도시인 애틀란타 시의회가 구걸하다 적발되면 최대 30일간 사회봉사, 2회 시 징역 30일, 3회 시 최소 징역 90일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구걸행위 단속에 관한 조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관광객 유치를 늘리기 위해서라는데 노숙자 인권탄압 논란이 거센 모양이다.

중국 상하이 공안 당국은 지난 8월 단속에 자주 적발된 ‘거지 리스트’를 공표했는가 하면 리투아니아에서는 구걸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적선한 사람도 수십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등 세계 각국이 ‘거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구걸행위가 적발되면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형을 받게 된다. 수천만∼수억원씩 돈 받은 높으신 분들은 법망을 잘도 빠져나가는데 돈 몇 푼 받았다고 감옥행이라니 너무 야박한 것 같아 씁쓸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