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강남스타일과 뉴저지스타일
입력 2012-10-04 18:46
요즘 전 세계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에 휩싸여 있다. 미국 빌보드 차트 2위, 아이튠즈 음원 차트 1위, 영국 인기 대중음악 순위 1위 등을 기록하자 국내 언론들은 “이제 한국 대중음악도 세계적 수준에 오른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흥겨운 가락과 코믹한 춤, 과감한 한국어가 뒤섞여 펼쳐지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누가 들어도 푹 빠질 만한 매력을 갖췄다. 싸이는 자신의 노래가 히트하자 외국 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에 속속 출연했다. 그는 그런 자리에서마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2008년 집권하자마자 이명박 대통령은 ‘747 공약’을 내놨다. 매년 7% 성장에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권 국가를 임기 내에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코스피 지수 5000을 넘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이 가운데 이뤄진 게 없는데 ‘한류(韓流)’ 음악산업은 유일하게 예외다. 주식은 몇 십배 올랐고 음원과 음반 매출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우리 음악산업계의 성공 공식은 걸그룹과 댄스뮤직 물량공세였다. 이를 토대로 중국 일본 미국에 진출했다. 멋진 몸매와 반할 만한 외모, 세련된 편곡과 율동은 꽤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기획사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개성 없이 무대에 앞세워진 소녀들은 그저 기획사의 이익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강남스타일’에서 바뀐 것이 있다면 싸이라는 남성 솔로가수라는 점이다. 이 노래가 창출한 부(富)는 그가 속한 기획사가 대부분 챙겼다.
한류를 다루는 언론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선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그저 ‘강남스타일’이 미국 도처에서 불려진다거나, 말춤이 인기가 좋다거나 하는 데만 포커스를 맞춘다. 한류의 주인공임에도 싸이와 걸그룹 멤버들이 제대로 대접받은 적은 별로 없다. 선망의 대상인 ‘아이돌’이긴 하지만 감동을 주는 예술가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셈이다. 어떤 이는 “저렇게 하면 돈도 잘 벌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만 흥에 빠질 뿐이다.
미국 뉴저지주 사람들에게 “이 동네 자랑이 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이곳 출신인 스프링스틴은 스무 살에 노래를 시작해 예순을 넘긴 지금까지 줄곧 ‘뉴저지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갑부가 돼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옮긴 다음에도 그의 노래에는 여전히 고향 얘기가 담겨 있다. 몇 달 전 새로 나온 새 앨범의 주제도 산업화에 소외된 뉴저지 사람들과 첨단 도시로 뒤바뀐 뉴저지다.
어떤 미국 언론도 스프링스틴을 다루면서 음악산업계를 들먹이지 않는다. 그가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매니지먼트 회사와 음반 기획사의 주식이 얼마나 올랐는지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다. 비단 스프링스틴에게만 이 같은 현상이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언론은 대다수 대중음악가를 ‘아티스트(Artist·예술가)’로 대접하고, 일반 대중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팝음악이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힘을 지니는지 수없이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강남스타일’과 ‘뉴저지스타일’의 차이는 확연하다. 세상으로부터 예술가 역할을 부여받은 가수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가 아닌 ‘광대’로만 취급되는 가수는 언제 자신의 노래를 바꿀지 모른다. 음반 기획사만 싸이로 하여금 ‘강남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도록 만들어선 안되는 게 아닐까.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