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고라니씨의 기도

입력 2012-10-04 18:46


달빛이 차가운 10월의 어느 날, 서울숲 동물 가족들이 새 식구를 맞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동물 가족들은 쑥스럽게 인사하는 새 식구를 따뜻한 웃음으로 반겨주었습니다.

“자,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들어봅시다.” 서울숲 동물 중 최고 연장자인 고라니씨의 말에 토끼 드워프양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와 남동생은 엄마 젖도 못 떼고 대형 마트로 팔려갔어요. 거기서 한 초등학생에게 팔려갔는데 아이 엄마가 토끼는 물을 안 먹는다며 물도 안 줘서 목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어느 날 아이가 동생 귀를 잡고 꼬리털을 염색한다고 못살게 구니까 동생이 그 손을 깨물었어요. 그러자 아빠라는 사람이 제 동생을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그 자리에서 죽었답니다. 결국 동생은 쓰레기통에, 저는 이곳에 버려졌어요.”

드워프양은 차라리 버려진 게 다행이라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3년을 같이 산 동거인이 아기를 가지면서 시댁의 성화에 결국은 자신을 버렸다는 삼색 고양이 삼순씨는 구청 사람에게 잡혀 중성화 수술을 받고 한쪽 귀를 잘렸습니다.

“귀 끝에 신경이 없어서 괜찮다 했지만 아픈 건 둘째 치고 그곳이 너무 무섭고 끔찍했어요. 옆방에서는 새끼 고양이들이 살려달라고 울어대고….”

삼순씨가 떠올리기도 힘든 듯 눈을 질끈 감는데, 옆에 있던 페럿군이 그녀의 잘린 귀를 물고 장난을 칩니다. 펄쩍 뛰며 화내는 삼순씨를 진정시키며 고라니씨가 물었습니다.

“페럿군은 왜 여기에 왔지?” “장난이 너무 심해서 같이 못산다고. 헤헤.”

고라니씨는 안쓰러움에 페럿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아직 어린 페럿군은 그저 흙과 나무가 반가워 뒹굴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흙투성이가 된 페럿군의 목에서 분홍색 목걸이가 반짝거렸습니다. “목걸이가 나뭇가지나 철망에 걸리면 위험하단다.”

고라니씨는 페럿군의 목걸이를 끊어주었습니다. 끊어진 목걸이처럼 옛집과의 인연도 다시 이을 수 없겠지요. 페럿군은 그제야 서러운 눈물을 쏟아냅니다. 드워프양과 삼순씨를 새집으로 들여보내고 고라니씨는 잠든 페럿군을 등에 업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벌써 서리가 내렸네. 올겨울에도 못 견디고 죽는 친구가 있겠지. 그 빈자리는 다시 누군가에게 버려진 새 친구가 채우겠지만…. 부디 무사히 살아서 봄을 맞을 수 있기를.’ 고라니씨는 새 식구들의 안녕을 밤하늘에 빌어 봅니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