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남은 술로 가짜양주 만들어 200억 챙긴 형제
입력 2012-10-03 21:44
강남 일대에서 먹다 남은 찌꺼기 술을 고급 양주로 둔갑시켜 판 무허가 삐끼주점(호객행위로 손님을 모아 영업하는 술집) 실제 업주 형제가 구속기소됐다. 이들은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에게 영업방식을 전수한 스승으로 삐끼주점 업계 대부로 알려졌다. 검찰은 찌꺼기 술 수집부터 제조, 판매까지 단계마다 범죄조직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삐끼 통한 조직적 판매=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김재훈)는 팔다 남은 찌꺼기 술 등으로 가짜 양주를 만들어 판 혐의(상표법위반 등)로 김모(47)씨를 구속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3∼8월 스카치블루 12년산, 윈저 17년산 등 양주 찌꺼기(속칭 ‘후까시’)로 가짜 양주를 만들어 친형이 운영하는 무허가 유흥주점 5곳에서 판매한 혐의다. 김씨 친형(49)은 지난 8월 무허가 술집을 운영하다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대타’를 내세운 혐의(범인 도피 교사 등)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 친형은 삐끼 주점영업을 처음 도입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가 구속되자 이경백씨가 검찰에 “선생님도 잡혔다면서요?”라고 되물을 정도라고 한다.
김씨 형제는 대학로, 건대입구, 서울역 등 유흥가 일대 삐끼조직과 계약을 맺고 만취 고객들을 승합차로 유인해 오는 방식을 썼다. 삐끼조직은 지역 조폭에게 수익 10%를 활동비로 주고 비호 받았다. 주로 사회 초년생들을 노렸고 피해자 중에서는 사법연수생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형제는 손님의 신용카드 한도를 조회해 한도 최고액까지 술값을 내도록 했다. 가짜 양주를 마신 손님들은 보통 1∼2시간 안에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신고를 못하게 성매매를 알선했고 신용카드로 결제해 증거도 남겼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 10년간 이들이 최소 200억원대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먹다 뱉은 쓰레기 술까지 재활용=김씨 형제는 가짜 양주 제조를 위해 손님들이 먹다 잔에 남긴 술까지 모조리 긁어모았다. 찌꺼기 술만 모아 파는 일당에게서 20ℓ 물통 단위로 구입하거나 500㎖에 6000∼7000원 하는 저가 양주도 활용했다. 검찰은 “잔에 남은 술까지 활용해 일부 술은 매우 묽었다”고 했다.
김씨 형제는 이렇게 모은 술을 500㎖ 생수병에 담고 구멍을 뚫은 고무장갑 손가락 부분을 이용해 다시 양주병에 옮겼다. 양주병은 업소에서 수거한 빈병이 사용됐다. 양주 마개는 점조직에서 사들였다. 그래서 가짜 양주 마개는 라벨이 이중으로 돼 있었다. 가짜 양주는 원가보다 30∼50배 비싼 20만∼30만원에 판매됐다.
검찰은 김씨 자택에서 가짜 양주 15병과 찌꺼기 양주가 든 500㎖ 생수통 766개, 저가 양주가 담긴 1.8ℓ 생수병 28개, 빈 양주병 83병과 병마개 178개를 압수했다. 검찰은 경찰 상납 구조와 가짜 양주 제조 공장, 범죄조직과의 연관성 등을 계속 수사할 계획이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