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폭행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

입력 2012-10-03 19:05

30대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61세 여성이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1일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한 여성의 인격과 미래를 파괴한 가정 파괴범이 이에 대한 죗값을 받아야 함에도 활개치고 있다. 이제 법 절차는 제가 기댈 곳이 없다”며 “흉악범에게 적법한 처벌이 내려지길 하늘에서라도 지켜보겠다”고 유서를 남겼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극단적 선택을 했을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피해여성은 평택의 한 병원에서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가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관광지, 학교, 안방과 거실에 이어 병원까지 야수들의 손이 안 뻗치는 안전지대는 더 이상 없다.

통영의 초등학생이 등굣길에 이웃 아저씨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하고, 나주에선 거실에서 잠자던 7살 여자아이가 이불에 싸인 채 납치된 뒤 성폭행 당해 온 나라가 성폭행범 처벌을 강화하자고 떠들어댄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도 죄를 엄중하게 다스려 흉악한 성폭행 범죄가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이끌어야 할 법원이 오히려 가해자 보호에만 치중하는 것 같아 개탄스럽다.

지난달 17일에는 동료 여교수를 성폭행한 의대 교수에게 검찰과 법원이 법정 최저형인 징역 2년6개월을 구형하고 선고했다. 30대 미혼인 여교수는 정신적 충격으로 자살까지 기도했지만 재판부는 술에 취한 우발적 범행이라며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같은 날 서울고법은 청각 장애 여중생을 성폭행한 30대 남성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의 1심이 과하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풀어줬다. 자신의 어머니가, 딸이 성폭행을 당해도 이렇게 관대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여성가족부는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행범에 대한 법정형을 징역 10년 이상이나 무기징역으로 올리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성폭행 피해자는 아이이든 어른이든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만큼 피해자 범위를 모든 여성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 성폭행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억울한 죽음도 없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