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에 눈 감은 공직자윤리委… 총리실 소속 고위공무원 퇴직前 사기업에 재취업

입력 2012-10-03 18:35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가 위법도 걸러내지 못한 채 유명무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심사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국민일보 9월 20일자 1면)이 제기된 데 이어 위법을 사실상 묵인한 사실까지 밝혀졌다.

3일 국무총리실이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에게 제출한 ‘2008년 이후 퇴직자 재취업 현황’에 따르면 고위공무원(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으로 일했던 이모(58)씨는 지난 3월 30일 산은캐피탈의 감사위원으로 취업했다. 문제는 이씨가 4월 4일 퇴직했다는 것. 퇴직 전부터 금융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공무원은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국가공무원법 제64조를 위반한 것이다.

이씨의 ‘취업제한여부 확인 요청서’에는 퇴직일자(2012.4.4)와 취업예정일(2012.3.30)이 명시됐지만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그냥 넘어갔다. 검토의견서에도, 총리실에 보낸 결과 통지 공문에도 겸직 의무 위반은 언급되지 않았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취업제한 여부를 심사할 뿐”이라며 “내용은 총리실에 알아보라”고 했다.

총리실은 “(겸직 의무) 위반이 맞다”면서도 “이씨가 퇴직 후 민간인 신분으로 재취업을 신청, 조치할 수단이 없었다”고 밝혔다. 법무감사담당관실이 이씨와 재취업 회사에 ‘문제될 수 있다’고 구두 통보한 게 전부였다. 공직자윤리위원회와 총리실의 해명대로라면 규정대로 처리했는데 고위공무원의 겸직 의무 위반을 방조한 셈이다.

이 밖에 고위공무원 출신 신모(60)씨와 김모(54)씨는 각각 2010년 4월 26일과 6월 21일 퇴직 당일 재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퇴직일부터 민간인 신분인 만큼 절차상 법 위반은 아니지만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평가다. 특히 농수산국토정책관으로 일하다 한국바이오디젤협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신씨는 업무관련성 문제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기식 의원은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후 유관기관 재취업에 면죄부를 줄 뿐만 아니라 위법조차 막지 못하고 있다”며 “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