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한용섭] 북한의 최근 동향이 의미하는 것
입력 2012-10-03 18:34
“본질적 변화와 거리 멀어… 남한의 선거정국에 개입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김정은 북한 정권이 언제 개혁·개방으로 나올까. 일부에서는 젊은 지도자 부부가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과 김정은의 스위스 조기 유학경험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이 이미 개혁·개방으로 나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일부에서는 개혁·개방은커녕 구태의연한 대남 협박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도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본다. 전자는 역사적 맥락을 망각한 채 갑자기 세종 같은 성군이 북한에 나타나기를 바라는 희망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고, 후자는 북한에서 누가 무엇을 하든 폐쇄사회의 독재적 상징조작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런 호기심과 기대에 찬물을 끼얹듯 북한군은 남한을 비방하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계속 침범하고 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에 대한 협상을 재개하지 않고 지난 4월 미사일 시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이유는 내부의 취약성을 외부로 돌리려는 것이든지 김관진 국방장관의 말대로 “NLL에서 큰소리 내면서 다른 데서 공격하기 위한 성동격서”라고 볼 수도 있다. 중·일 간 센카쿠열도 분쟁과 일본의 독도 문제 제기에 편승해 NLL을 분쟁지역화하고 중·일 간 분쟁에서 중국 편을 들면서 반일 공동전선을 형성할 뿐 아니라 일본 편을 드는 미국에 반대하여 북·중 간, 혹은 동북아에서 반미전선을 형성하고자 하는 의도도 숨어 있다.
아울러 천안함 같은 사태를 만들어서 한국사회의 여야, 진보와 보수 간 분열을 심화시키고, 남북한 간 긴장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로 책임 전가하면서 선거 정국에서 남한 유권자들에게 ‘전쟁이냐 평화냐’의 선택을 강요하려는 이유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오는 진정성 있는 증거는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27년 전 소련의 개혁·개방시대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핵무기 군비경쟁에서 국력이 소진되었다고 판단한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운명을 건지기 위해 신사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방어에 충분한 군사력만 남기고 군비감축을 단행했다. 군수산업을 민수산업으로 바꾸었고, 정치경제체제의 개혁과 개방을 추구했다. 그 결과 소련을 안전하게 해체하고 러시아로 체제 전환을 이룩했다. 중국의 덩샤오핑 또한 개혁·개방의 걸림돌이 된 군부 노장층을 퇴직시키면서 사상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런데 김정일은 소련 붕괴 원인을 개혁과 개방, 서방의 신뢰구축 제안과 영향력을 수용한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문을 꽁꽁 걸어 잠그는 한편 자위적 억제력을 보유한다는 명분 하에 핵무기 개발을 서두름으로써 민생보다 선군정치를 채택했다. 그 결과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지만 경제와 민생은 피폐해지고 국제고립은 심화됐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은 이미지 바꾸기를 시도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내부 변화 요구에 부응하여 새 술과 새 부대를 준비하는 게 요구된다. 즉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개혁·개방정책을 준비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도록 정치사회경제체제를 개혁해야 한다.
북한이 진정 개혁·개방으로 나오려면 방어충분성의 방위철학으로 전환하고 비핵화 협상을 조건 없이 재개하며, 군사와 경제 간의 상호의존성을 기초로 군사비에 경제적 효율성을 적용해야 한다. 김정일은 제2경제위원회를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옮겨서 모든 무기의 연구 개발 생산에 드는 군사비를 내각의 통제를 받지 않고 초법적으로 사용해 왔다. 선군정치 하에서 군사비가 최우선순위를 보장받았으며, 경제적인 감독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의 개혁·개방의 단초는 제2경제위원회가 민생을 책임진 내각의 통제와 감독 속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 내부적 결단 없이 남한의 선거정국에서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판단이 될 것이다. 우리도 대통령선거 정국에 관계없이 북한의 도발에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단호하게 대처하는 성숙한 안보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첩경이다.
한용섭 (국방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