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문화관광해설사의 위기

입력 2012-10-03 18:33


퇴직공무원인 전남 진도의 허상무씨는 연예인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문화관광해설사다. 이순을 넘긴 나이지만 지역발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12년째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진도를 찾는 관광객들을 안내한다. 이 때문에 발이 부르트고 목이 쉬기 일쑤다.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으로 시작되는 진도아리랑을 부르기도 하고 관광객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앞장 선다. 전국에는 허씨와 같은 열정적인 문화관광해설사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여행 참가자 수(만 15세 이상 국민이 한 번이라도 여행한 경험이 있는 인구)가 3500만명이나 되고 이들이 지출한 비용이 20조원을 넘었다. 외래관광객도 꾸준히 늘어 올해는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인트라바운드와 인바운드 관광이 활성화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문화관광해설사들의 역할도 크다고 하겠다.

문화관광해설사는 역사, 문화, 생태, 지리, 음식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관광객 눈높이에 맞춘 해설로 오감을 만족시켜 주는 능력도 요구된다. 관광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에듀테이너 역할도 해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산을 오르내리는 등 체력도 상당해야 한다. 최근에는 외래관광객이 늘면서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 통역 문화관광해설사가 생겨나는 등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문화관광해설사 제도가 도입된 때는 2001년.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국가적 대형행사를 앞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우리 문화유산을 내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문화유산해설사를 양성했다. 그러나 해설영역이나 활동지역이 생태·녹색관광, 농어촌 체험관광, 관광지 등으로 확대되면서 문화유산해설사는 2005년 문화관광해설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관광해설사는 2800여명. 문화관광해설사가 되기 위해서는 신규교육 100시간을 이수하고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광역단체별로 매년 5일 정도에 이르는 보수교육도 받는다. 지원자는 많지만 자리가 적어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증 취득이 고시합격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문화관광해설사들에 대한 처우는 입에 올리기가 민망할 정도로 열악하다. 이들이 받는 일비는 교통비와 식비 등을 포함해 하루 3만∼5만원. 그나마 한 달에 열흘에서 보름 일하기가 쉽지 않다. 자원봉사자라 4대 보험 가입도 안 되고, 근무 중 사고를 당해도 보상받을 길이 막막하다. 아무리 자원봉사라지만 생계에 도움이 안돼 우수 인력들의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문화관광해설사들을 힘 빠지게 하는 일이 또 생겼다. 문화관광해설사들에게 지급되는 일비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금과 자치단체의 보조금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지원예산을 올해 72억원에서 내년 46억원으로 대폭 삭감하도록 했다. 이 삭감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문화관광해설사를 2000명으로 감축할 수밖에 없다. 관광 서비스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확대해야 마땅한 문화관광해설사를 감원하면 국민들의 문화관광향수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틈날 때마다 관광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는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는 문화관광해설사 제도를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원봉사자라는 굴레에 묶여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보수를 받는 게 현실이다. 불요불급한 예산은 당연히 줄여야 한다. 그러나 푼돈이나 다름없는 지원금을 대폭 삭감해 일자리를 줄이고 관광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다면 이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