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현교회 표정… 김창인 목사 소천 소식에도 교회 차분 애도 분위기 없어 아쉬움

입력 2012-10-02 20:57

2일 김창인 목사의 소천 소식을 접한 서울 충현교회는 조용했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마찰 때문인지 대부분 언급을 피했다.

교회 사무실 관계자는 “오늘 저녁 당회원들이 모여 장례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교회 내에는 빈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교회 도서관에도 김 목사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도서관 근무자는 “원로목사님과 관련된 서적은 설교집을 빼곤 찾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미 관련 도서는 모두 치웠다”고 말했다. 그나마 찾은 교회연혁 자료집에도 김 목사와 관련된 것은 교회 개척과 교육부서 개설, 건축 관련 일지 등만 명시 돼 있을 뿐 탁월한 1세대 목회자의 생애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6.25 전쟁 이후 가난하고 소망 잃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한국장로교단의 한 축을 이끌어 왔던 지도자에 대해 추모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회에서 마주친 성도들도 ‘김 목사의 소천소식을 접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라”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김 목사는 성경의 절대무오사상, 하나님의 절대주권, 말씀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강조하며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충현이즘’ ‘김창인이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대단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 강남 노른자 땅에 건립된 대형교회로 대통령이 출석하는 교회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지만 리더십 이양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김 목사는 또 장애인 선교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밀알선교회가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교육관 건물에 사무실을 내어 줘 현재 밀알선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했다.

백상현 기자